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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는 사람들

맞춤형 보육을 둘러싼 혼란은
좋은 정책에 대한 되돌아보기
좋은 취지만 강조하는 정책은
현장 외면했다는 또 다른 반증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6년 06월 21일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는 풍경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머릿속으로는 다른 이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정부 정책 가운데 맞춤형 보육을 둘러싼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정책 도입 취지는 나쁘지 않다.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줄이고 실제 필요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부 정책이나 지자체 정책에서 취지와 목표부터 잘못 시작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시행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 취지를 흐리게 할 뿐이다.

한때 양산시가 조경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 적이 있다. 거리마다 큰 가로수를 심어 푸른 도시 양산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삭막한 도시환경을 개선하려고 조경사업을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곧 부작용이 하나둘 생겼다. 취지가 좋다 보니 의욕이 넘친 탓일까? 과도한 예산을 투입한 것은 둘째고 시민 불편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도심에 가로수를 심을 만한 공간이 없다 보니 인도를 화단처럼 만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인도에 빽빽하게 심은 가로수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공간마저 빼앗아 버렸다. 가로수 지지대가 인도를 아예 막아버린 곳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보도했을 때 담당 공무원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응했다.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야 인도 위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고, 일부 장애인들이 다녀봐야 얼마나 다니겠냐며 오히려 보행권을 문제 삼는 기자에게 어이없다는 식으로 반문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뻔한데 왜 이런 대응을 할까? 궁금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남자들이다. 그들은 차를 타고 다닌다. 잠시 걷기도 하겠지만 차를 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인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행약자는 차고 넘친다. 유모차를 끌어야 하는 주부, 지팡이와 보행기를 의지해야 하는 어르신, 어른보다 상황판단이 떨어지는 아이…. 그들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타고 지나며 자신들이 만든 녹색 풍경에 흐뭇해할 뿐이다. 정책이 일상과 이어지지 않는 사례다.

기자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많은 후배와 함께 지냈다. 처음 기자들이 들어오면 늘 똑같은 과제를 주곤 한다. 하루 날 잡아 양산 곳곳을 걸어 다니며 취재 아이템을 찾아오라는 지시다. 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과 걸어 다니며 바라보는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자도 사람인 탓에 자신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한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기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후배들에게 말한다.

가끔씩 기사에 오류가 있거나 오보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충분한 현장정보를 취재하지 못했을 때다. 성급하게 일방의 주장을 받아쓰기하듯 기사화할 때 늘 문제가 생기곤 한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은 사실 불가능하다.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입장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좋은 정책은 취지가 좋은 것이 아니라 준비과정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정책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맞춤형 보육제도와 관련한 인터넷 댓글 가운데 한 학부모는 “무상보육도 마음대로, 맞춤형 보육도 마음대로”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진행한 무상보육이 시간이 지나자 맞춤형보육으로 모습을 달리한 것을 두고 한 말로 짐작된다. 정책결정권자 입맛대로 춤추는 정책 변화는 결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외면받기 마련이다. 비단 맞춤형 보육제도뿐만 아니라 많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에게 해당하는 지적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만큼 안다고도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한다.

지역신문 기자를 하다 보니 가끔 학교나 청소년단체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부끄러운 경험과 실력이지만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글쓰기와 신문읽기에 대해 토론식으로 강의를 진행하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학생들에게 종합운동장 주변에 보이는 사물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처음엔 머뭇거리다 하나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지하철, 지하차도, 현수막, 자동차, 공원, 간판, 건널목…. 몇 년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이야기한 학생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양산시는 2008년 종합운동장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62m 게양대에 대형태극기를 설치했다. 사업비만 6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대형태극기는 자라나는 청소년과 시민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추진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태극기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 봤을지 모르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태극기가 지금도 나부끼고 있다. 현장을 외면한 정책처럼 말이다.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6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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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맞춤형 보육 정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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