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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

에너지는 물과 공기와 같지만
안전을 버리고 얻은 편리함
원전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다시 선택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6년 07월 05일
 
↑↑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삶은 계란의 껍질이 / 벗겨지듯 / 묵은 사랑이 / 벗겨질 때 /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 너의 그림자가 / 움직이듯 / 묵은 사랑이 / 움직일 때 /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 젖어있듯이 / 묵은 사랑이 /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 젖어 있을 때 /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김수영 시인의 ‘파밭가에서’라는 시다. 시인은 낡은 것을 버릴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양산지역 머리맡에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려고 한다. 현재 8기를 운영하고 있는 기장지역에 추가로 원전 2기가 건설 허가를 받은 것이다. 내년 고리원전 1호기가 폐쇄된다고 해도 원전이 추가되면 모두 9기의 원전이 운영된다. 세계 최대 원전밀집지역이 되는 셈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물과 공기를 손꼽는다. 생존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인은 ‘에너지’가 삶의 필수요소가 됐다. 우리가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했던 에너지는 어느새 물과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편리한 삶을 위해 에너지를 얻은 우리는 ‘안전’이라는 요소를 버려야 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온 인류는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다. 그 덕분에 언제나 위험에 처하게 됐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다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삶에 물과 공기가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그 존재를 잊고 사는 것처럼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만든 원전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무엇보다 에너지를 위해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버려야 했는가를 더 자주 잊고 산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편리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으려 했고, 그 욕심만큼 안전은 고려할 대상이 아녔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잊고 지냈던 ‘안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냈듯 또 우리는 안전을 쉽게 잊어버린 채 편리한 삶과 더 많은 에너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안전을 되찾기 위해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안전보다는 편리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제대로 된 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안전을 포기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안전을 선택할 때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탓일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원전밀집지역이 바로 머리맡에 들어선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 가운데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역에 원전을 짓는 정부 행태에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또한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부가 말하는 안전대책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도 귀담아들을 부분이다.

하지만 단지 추가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우리 지역 가까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정부 안전대책을 믿지 못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지 않은 채 낡은 생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 행태에 근본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인은 ‘삶은 계란의 껍질’, ‘먼지 앉은 석경’,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을 통해 낡은 것, 과거의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때 비로소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무엇인가 얻으려 할 때 잃어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전을 둘러싼 수많은 논의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정부 말처럼 에너지와 안전 모두를 얻을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후쿠시마 사건에서 보듯 ‘확실한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원전 하나를 더 짓고 덜 짓고의 문제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선택할 것인가, 더 많은 안전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안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를 비롯한 더 많은 에너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번 추가 원전 건설 허가를 둘러싼 논란을 단지 일부 지역주민 반발로 폄하하는 정부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모두 얻을 수 없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나눠야 한다.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6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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