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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진화

소통은 가장 중요한 정치 덕목 중 하나
새해 읍면동 순회간담회 나선 양산시
다양한 민원과 처리 장점 뚜렷하지만
10년 넘게 같은 형식, 변화 고민할 때

홍성현 기자 / redcastle@ysnews.co.kr입력 : 2018년 01월 23일
 
↑↑ 홍성현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그리고 능행(陵幸). 우리 역사에서 소통의 군주로 손꼽히는 정조대왕이 백성과 직접 소통하고자 하는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언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백성이 국왕에게 올리는 일종의 상소이고, 격쟁은 징과 북을 두드려 임금의 행차를 막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은 문서로, 글을 모르더라도 말로써 왕에게 직접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능행은 임금이 능에 행차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조대왕은 즉위한 뒤 뒤주에 갇혀 비운의 죽음을 맞았던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수원 현륭원으로 옮기고 해마다 한 번 이상 참배했다. 이는 효심의 발로이자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듣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정조대왕은 능행에 나서면서 격쟁을 적극 허용했다. 수원에서 환궁하면서 “현륭원 입구에서 숭례문까지 상언을 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격쟁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에 기록된 흑산도에 사는 평범한 백성 김이수가 정조를 만나 흑산도 주민 민원을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흑산도 성인 남성은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세금으로 내야 했다. 남자가 많은 집은 생업을 포기하고 닥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땅이 척박해지고 더 이상 벨 닥나무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종이 세금은 존재했다. 김이수는 격쟁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혈혈단신으로 한양 길에 올라 임금 행차를 막아서고 격쟁을 울렸다. 정조대왕은 흑산도 현장조사를 지시한 뒤 닥나무 종이 세금을 폐지했다. 

물론 격쟁을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1790년(정조 14년) 서울에 사는 이안묵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산(山) 소유권 문제로 3년간 7차례나 격쟁을 시도해 정조대왕의 골치를 썩이게 했다. 그런데도 정조대왕은 이를 꾹 참고 귀담아들었다고 한다. 

전제군주국가였던 조선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백성, 즉 시민과 소통은 오늘날에도 가장 중요한 정치 덕목 가운데 하나다. 양산시장도 해가 바뀌면 간부 공무원을 대동한 채 읍ㆍ면ㆍ동을 돌며 순회간담회에 나선다. 이 자리에서는 백여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지고, 시장은 이에 대해 답변한다. 다양한 민원이 나오고 행정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즉시 처리하거나 중ㆍ장기 과제로 분류해 해결책을 찾는다. 간담회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순회간담회를 부정적으로 보자면 너무 딱딱한 형식이라는 점이다. 양산시장을 비롯해 지역구 도ㆍ시의원, 간부공무원이 배석하지만 참석한 주민과 자유롭게 서로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주로 시장이 발언하고, 도ㆍ시의원들조차 듣기만 한다. 상북면에서는 양산시 행정과 지역 유지들 뜻에 반하는 의견을 밝힌 한 시민의 발언을 막았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린다. 조금 더 비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참석한 주민이 대부분 행정과 직ㆍ간접 관련 있는 관변ㆍ사회단체장이다 보니 권위적인 만남이 될 수밖에 없고, 행정이 뭔가 시혜를 베푸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양산시가 새해 순회간담회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읍ㆍ면ㆍ동 현황 보고와 주요 시정 보고, 주민 건의사항 청취와 답변순으로 진행하는 형식에는 변함이 없다. 대전 유성구는 2014년 기존 순회간담회를 폐지하고, 타운홀 미팅(Town-hall meetling) 방식으로 변경했다. 타운홀미팅은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당시 뉴잉글랜드 주민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토론 끝에 투표한 것에서 유래한 말로,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찬반 의견을 나타내며 시간 제약도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유성구는 이 방식으로 바꾸고 처음에는 이곳저곳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과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와 당황했으나 이 과정을 거친 뒤 오히려 사회 갈등이 줄어들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참석 대상자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해봐야 한다. 관변ㆍ사회단체장이 참석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은 평소에도 행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자신의 의사를 개진할 기회가 많다. 또 각종 행정 정보에도 밝다. 오히려 행정에 불만이 있거나 행정에 대해 잘 모르는 주민을 대상으로 시정을 설명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순회간담회 취지를 더욱 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질의응답보다 때로는 소위 감투 없는 평범한 시민 목소리가 더욱 따끔하게 들릴 수 있기에. 

순회간담회를 처음 취재할 때 피처폰이라 불리는 일반 휴대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순회간담회를 취재하면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순회간담회는 변화가 없다. 10년이라는 세월, 이제 순회간담회도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홍성현 기자 / redcastle@ysnews.co.kr입력 : 2018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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