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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용신제, 그 자체의 가치


홍성현 기자 / redcastle@ysnews.co.kr입력 : 2019년 12월 10일
 
↑↑ 홍성현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가야진용신제가 두 번째 도전에서도 쓴잔을 마셨다. 경남무형문화재 제19호인 가야진용신제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하려는 시도마저 좌절됐다. 지난 2015년 심사 탈락에 이어 두 번째 실패다.

양산시와 가야진용신제보존회는 지난해 12월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신청했고, 지난 10월 문화재청이 현지실사를 진행했다. 2015년 당시 탈락 사유였던 ‘자료 미흡’ 등을 보완하기 위해 학술용역과 학술대회 등을 시행했고, 정부의 가야사 복원사업과 맞물려 승격이 유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문화재청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단체종목 지정을 위한 ‘지정 가치 지표조사’ 결과 국가문화재로 지정 가치가 없다고 양산시에 통보했다. 가야진용신제는 국가 제례에 풍물놀이 등 민속학이 추가로 담겨 국가문화재로서 지정 가치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가야진용신제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세 번째 도전 여부는 불확실하다. 양산시는 탈락 사유를 자세히 검토한 뒤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재추진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문화재청이 밝힌 탈락 사유가 가야진용신제의 핵심 내용인 데다 1999년 이후 국가지정문화재 단체종목 승격 사례가 드문기 때문이다.

가야진용신제는 원동면 용당리 일대에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국가 제례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가야진용신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가 제전(祭典)으로 제정한 중사(中祀)다. 중사는 국가에서 칙사(勅使)를 보내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올리던 제사다. 여기서 명산대천은 오악(五岳), 사진(四鎭), 사해(四海), 사독(四瀆)으로 구분했는데, 가야진용신제는 사독 가운데 하나다. 사독이란 경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있는 큰 강을 뜻한다. 즉 경주 남쪽에 있는 황산강(지금의 낙동각)에서 지내던 국가 제례인 것이다.

가야진용신제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제례도 시대에 따라 변천하면서 전승지만 중사인 사독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용신제다. 신라 때부터 조선 말기까지는 용신에게 뱃길 안전과 우순풍조(雨順風調, 비가 때맞춰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부는 상황)를 기원하는 유교식 제례였으리라 추정하지만, 근래에는 마을 공동체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에 기우제와 풍물놀이가 더해져 민속 제례화한 독특한 형태의 용신제로 변모했다.

결국, 문화재청은 국가 제례 원형이 아닌 민속제례화한 현재의 가야진용신제는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비록 가야진용신제가 또다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하지 못했지만, 그 자체로 우리 전통과 정신을 잇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문화다. 일제강점기 홍수로 사당이 쓸리고 일제 탄압으로 제례가 금지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지역 주민이 스스로 나서 복원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경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유일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용신제라는 것만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야진용신제의 전설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양주도독부에 있던 한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중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그런데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 “나는 이곳에 사는 암룡인데, 숫룡인 남편이 첩만 사랑하고 나를 멀리하니 첩을 죽여주면 꼭 은혜를 갚겠다”고 애원했다. 전령은 여인의 딱한 사정에 동정심이 생겨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숫룡이 첩을 데리고 논다는 용소에 가서 칼을 빼 들고 바위틈에 숨어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강물이 끓어오르면서 용 두 마리가 불쑥 솟아올라 서로 엉켜 놀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전령은 다급한 나머지 앞뒤를 가릴 새도 없이 칼을 들어 내리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칼이 빗나가 숫룡을 죽이고 말았다. 남편 죽음에 슬피 울던 암룡은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고, 당신에게 용궁을 구경시켜 줄까 하니 가겠느냐?”고 제안했다. 전령은 용궁에 대한 호기심에 칼과 갑옷을 벗어놓고 암룡 등에 올라타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암룡과 전령의 자취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에는 알 수 없는 재앙이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힘을 모아, 용이 놀던 용소가 보이는 곳에 사당을 짓고, 세 마리 용과 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해마다 봄과 가을에 돼지를 잡아 용소에 던져 넣으며 제사를 지내니, 재앙이 그쳤다.
홍성현 기자 / redcastle@ysnews.co.kr입력 : 2019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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