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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69] 당신, 희망이..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69] 당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담당자 기자 119@dkbsoft.com 입력 2023/12/28 10:24 수정 2023.12.28 10:27
사랑과 절망의 이중주/ 이인규

이기철
시인
그는 특별한 이력(履歷)을 가진 사람이다. 교정(校訂)이라는 단어에 혹해 당연히 문장 다듬는 업무로 생각하고 입사 지원했더니 법무부 산하 교정국(矯政局) 공무원이 돼버렸다.

여기서 근무하던 중, 병든 어머니를 면회시켜 달라던 죄수 부탁을 받고 자기 마음대로 실행해 준다. 당연히 상사로부터 옷을 벗든지 청송교도소로 가라는 처벌 명령에 문을 박차고 나온다. ‘교도관 출신 우대’라는 문구를 보고 정신병원 보호사로 취직했다. 나머지 밥벌이는 해군 군무원으로 마무리.

공무원 문예 대전에 입상 이후 10년 만에 신춘문예를 통과했고,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도 보유하고 있으나 스스로 ‘B급 통기타 가수’라 부른다. 현재 지리산에 기대어 산 지 10년이 넘었다, 2019년에는 산문집, ‘누가 귀촌을 꿈꾸는가’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전해주기도 했다. 아들 이름이 ‘솔파’, 딸 이름은 ‘미래’다.

전업 작가인 그는 천상 소설가가 몸에 맞다. 할 말, 쓸 말이 많아서다. 소설처럼 산 사람, 그렇게 살다가 진짜 소설가가 돼버린 이인규 작가. 한동안 비밀스러운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중심에 둔 미스터리물(物)에 집중했다.

‘심판의 날’(2021)은 원래 ‘화형, 죽어 마땅한 자들’이란 제목으로 네이버 2020 지상 최대 공모전 미스터리 부문 최종심에 올랐다.

‘53일의 여정’(2022년)은 2019년 3월,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간 김여정 씨 실종 사건을 다룬 본격 정치ㆍ미스터리 소설이다. 그가 ‘미스터 Lee’여서 그런지 이쪽 장르 작품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로맨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장르 변화와 확장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올해만 벌써 두 권째 연애소설이다. ‘윤주’에 이어 지난 10월, ‘사랑과 절망의 이중주’(원제는 ‘절망 끝에 핀, 사랑’)를 펴냈다.

‘사랑과 절망의 이중주’ 책 표지.

이번 소설은 조금 특이한 방식을 취했다.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산청문인협회 카페’에 먼저 선보였다. 옴니버스는 아니다. 매 화(話)마다 지역 시인들 시 한 편씩을 내용 앞쪽에 배치했다. 총 41화로 매듭지었지만, 종이책 특성상 전부 싣지는 못하고 우선 12편만 골랐다. 추후 전자책 발간 시 전체 시편을 싣겠다고 밝혔다. ‘시와 소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해하면 된다.

통속(通俗)은 힘이 세다. 은밀한 것을 드러내는 일은 자칫 잘못하면 손 가락질 받기 쉽지만 세상 어디 통속적이지 않은 일이 있는가?

저자는 제대로 된 연애소설 한 편 쓰는 게 꿈이었음을 밝힌다. ‘아름다운 불륜의 끝은 고통과 파멸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과정임을 밝혀, 결혼의 허구와 매너리즘을 극복하고자 이 작품을 기획하고 출간했다’고 말한다.

소설 첫 장은 우연한 재회(再會)고 끝 장면은 소멸한 사랑이 남긴 새로운 만남이다.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따뜻하다. 사랑한다는 일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법이니까.

광활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풀어내는 남과 여가 남긴 러브 스토리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통증(痛症)을 동반하는 그때는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첫 이야기는 김규정 시인 시로 연다.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무식한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쁘고 싶고/ 향기롭고 싶습니다// 사랑을 받고 행복해지기 위하여’<’꽃‘ 전부>

주인공은 펜션을 운영하는 시인이다. 어느 날, 밤이 이슥한 시간에 찾아든 손님 중 한 사람, 과거에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였다. 마지막 이야기,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는 종장(終章)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영업 안 함’이라 써 붙인 표지판은 행간에서 읽히는 불안과 절망을 대신한다. 그는 사랑에 고통받았던 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가 간 그곳으로 동행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여덟 곡, 영정 앞에 노래가 담긴 USB와 악보를 두고 창밖을 본다. 눈이 내리는 시간. 그는 생을 마감할 시간을 쟀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수(未遂)에 그치고 만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겨우 몸을 추슬러 가며 일을 한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갈 즈음 걸려온 전화 한 통. 서울 장례식장에서 봤던 사랑했던 여자 동생이다. 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물건. 그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들고 온 상자 안에는 ‘풀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언니가 그러더군요. 자신이 받은 선물 중에 이게 가장 소중하고 값지다는 말을 제게 수시로 했어요”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홀로 남겨진 딸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봄이 왔노니,/ 나는 차디찬 겨울을 버티고/ 얼음장같이 서늘한 가슴에/ 온기가 찾아왔다는/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린다// 한바탕 웃고 울다가 가는 게 삶이라지만/ 이 계절에 까닭 없이 눈물짓는 건/ 그저 그런 삶에도/ 존재 이유를 알게 해주는/ 당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인규, ‘서늘한 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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