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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조선시대 양산군수(梁山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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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산군수(梁山郡守)

홈페이지 담당자 기자 119@dkbsoft.com 입력 2024/04/16 09:21 수정 2024.04.26 20:11

전대식
양산시문화관광해설사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면 조선시대 군수에게는 수령칠사(守令七事)라 해 지방을 통치할 때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사항이 있었다. 그 제1은 농상성(農桑盛: 농업과 잠업을 성하게 함), 제2가 호구증(戶口增: 인구를 늘림), 제3이 학교흥(學校興: 교육을 일으킴), 제4가 군정수(軍政修: 군역을 공평하게 함), 제5가 부역균(賦役均: 세금을 균등하게 부과함), 제6이 사송간(詞訟簡: 소송을 간명하게 처리함), 마지막 제7이 간활식(奸猾息: 간사하고 교활함이 없도록 함)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내용이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령칠사는 군수에게 의무 지워진 인사고과 주요 항목이었던 것이다. 지방관은 관찰사(觀察使)가 수령칠사를 조사해 국왕에게 보고했다. 인사고과는 엄정하게 시행됐는데, 고과 결과에 따라 승진, 영전, 좌천, 파직 등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수령은 임지로 떠나기 전에 임금 앞에서 수령칠사를 외는 의식을 치렀다. 성종실록 14년 9월 조(條)에는 평택현감 변징원(卞澄源)에게 임금이 수령칠사를 하문하자 그는 서슴없이 암송하고 7개 항목별로 다시 하문하자 그 내용을 거침없이 줄줄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조선시대 군수는 수령칠사 실적에 따라 인사고과를 했는데, 지금의 시장ㆍ군수ㆍ국회의원 등 인사고과는 우리 국민이 나라님이 돼 평가한다. 며칠 전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도 그 고과 중 하나인데, 결과를 보니 우리 모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4월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양산군수(梁山郡守)」 특별전을 개최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우리 양산에는 지방관이자 수령으로 204명의 군수가 다녀갔다. 품계는 종4품, 날짜가 확인되는 재임 기간은 189대 김상기(金商機) 군수 최단 9일부터 110대 김주(金霔) 군수 최장 5년 6개월이다.

조선시대 군수는 지역 행정, 사법, 군사, 교육, 문화, 치안, 풍속 등 지방 전권을 책임지고 행사하는 임금 대리인이었다. 훌륭한 군수는 백성들 삶의 질을 항상 염두에 두고 각종 규제를 혁파ㆍ완화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힘썼다. 물론, 군수 중에는 수령칠사를 팽개치고 백성을 힘들게 했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양산군수’라고 하면 삼조의열의 한 분인 20대 조영규 군수 말고는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양산시립박물관 ‘양산군수 특별전’ 포스터. [양산시 제공]

아직 개막 전이지만, 이번 특별전을 주관하는 박물관 학예사를 졸라서 미리 들은 귀띔으로는 이번 「양산군수」 특별전은 잊힌 양산군수들 흔적을 따라 걸어보고, 군수를 수반으로 행정을 꾸려간 군청과 여러 관아 건물 설명을 통해 타 지역과는 다른 양산군만의 특징을 소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로 대표적인 선정관(善政官)을 선별해 나라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국충정 군수, 애민 정신으로 군민 피폐한 삶을 치유하고 사랑과 실천으로 보살핀 애민 군수, 한말 역사의 중심에서 개화기를 이끌었던 개화 군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양산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술 한 잔에 고장 명승을 노래하고 깊은 감흥을 시로 남긴 풍류 군수들 이야기도 있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 크다.

특별전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준비하면서 동료 해설사와 함께 열심히 조사해 본 바로는 남다른 배경과 이력을 가진 군수도 여럿 있다. 예를 들면 부자 군수인 173대 유교조(柳敎祚)ㆍ192대 인목(寅睦) 군수, 형제 군수인 60대 이운근(李雲根)ㆍ69대 운림(雲林) 군수, 일본ㆍ미국 유학파 199대 이계필(李啓弼) 군수,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로 잘 알려진 11대 신립(申砬) 군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해 두 분 다 단식 24일 만에 순국한 175대 장태수(張泰秀) 군수와 179대 이만도(李晩燾) 군수, 편모슬하에서 모두 문과에 합격한 유례가 없는 6형제 장남 65대 원즙(元檝) 군수 등이 있다.

21대 변몽룡(邊夢龍) 군수 사연도 특이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영규 군수 후임인 그는 원동 용당리에서 황산강(낙동강)을 타고 북상하는 왜선을 습격해 수급 85과(顆)와 왼쪽 귀 284타(朶)를 베는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수하의 최기(崔沂)가 포로가 되자 적장에게 서한을 보내 석방시키고 정작 자신은 적과 사사로이 통했다 해 파직당하고 참형(斬刑)만 겨우 면해 함경도 변방 육진(六鎭)에 천역(賤役)으로 충군(充軍)됐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군수에서 하루아침에 병졸, 그것도 천역이라니….

이 글에서는 그리 부정적인 인물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우리 선조들을 이렇게 평가하듯이 세월이 흐른 뒤 우리 후손들은 21세기 초를 살았던 그들의 선조들을 평가할 것이다. 시쳇말로 씹어대기도 할 것이다. 지금을 잘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글 성격상 한자가 많이 쓰인 점, 독자들께 양해를 부탁드린다.


추기(追記): 4월 26일 개막된 「양산군수」 특별전에서 역대 양산군수는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진 204명에서 27명이 더 밝혀져 모두 231명이 됐다. 이에 따라 본문 중 군수의 댓수(代數)도 각각 변경된다. (예, 조영규 군수 20대→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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