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76] 사람은 무엇으..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76]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홈페이지 담당자 기자 119@dkbsoft.com 입력 2024/05/09 09:09 수정 2024.05.09 09:09
오리들(DUCKS)/ 케이트 비턴

이기철
시인
2008년 5월 1일, 뉴욕 타임스에 놀랄만한 기사 한 꼭지가 실린다. 캐나다 오일샌드 개발 현장(싱크루드)에서 오리 떼 수백마리가 해당 기업 내 ‘테일링 폰드’에 내려앉은 뒤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다. 석유를 함유한 타르를 분리, 처리하는 과정에서 쓰인 물은 유독성 폐기물이 모이는 웅덩이가 된다. ‘연못’이라니?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라는 상상을 깨버리는 배신감을 느낀다.

이 사실은 익명 제보자에 의해 기사화됐고, 캐나다 정부는 뒤늦게 조치했다. 오리 한 마리당 1천불, 총 50만달러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환경론자들은 이것을 ‘더티 오일’(Dirty Oil)이라 부른다. 이후 그린피스 활동가들도 ‘타르 샌드’를 멈추라며 시위했으나 오히려 11명이 기소됐다. 폐수를 방류하는 파이프를 막으려는 행동이었다.

이 책이 제목이 ‘오리들’이 된 이유다. 주인공이자 저자 케이트 비턴은 대학교 졸업 후 마땅한 자리에 취직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녀가 살던 곳은 고향 동부 연안 아름다운 섬, 노바스코사주(洲)에 있는 케이프브레텐.

한때 생선, 석탄, 강철 수출이 활발했던 곳이지만, 2005년 이후 사람을 수출하는 마을로 전락했다. ‘모조리 끝장난 곳’이기도 했다. 매년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다. 형제,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에게 미래란 ‘무언가를 갖기 위해 집을 떠나는 일’이 전부였다. 이런 도시는 흔히 ‘아무것도 없는 洲’(have_not_province), 지방 정부에서 평균 세수(稅收)가 전국 평균치에 못 미쳐 연방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처지라는 뜻이다.

‘오리들’(DUCKS) 책 표지.

주인공도 좋은 일자리는 고사하고 돈벌이를 위해 집을 나선다. 앨버타주에 있는 오일샌드. 여기는 캐나다 대표 화석에너지 개발 산업지로 오일샌드를 유정(油井)에서 뽑아 올린다. 액체 상태 원유와 달리 모래와 진흙이 섞여 있는 반고체 상태 원유가 오일샌드다. 이를 가공해 석유제품을 만든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몸으로 버티면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오일머니’ 현장이다. 어디서나 문과(文科) 출신이 갈 데는 별로 없다. 기술이 최고라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니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야 한다.

부모는 딸이 내린 결정을 못 마땅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빠듯한 수입으로 온 가족이 함께 살기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당장 그녀는 목을 죄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빨리 상환해야 한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자기가 살아갈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스스로 속이는 일을 감행한다.

그래픽노블, ‘오리들’은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그렇게 2년을 보낸 보고서이자 회고록인 셈이다. 그곳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오리들’ 사건은 빙산 일각이었고, 현장은 그야말로 탐욕, 성추행, 폭행, 남자들로부터 받은 희롱과 멸시, 조롱은 다반사였다. 그뿐 아니라 안전사고, 환경 오염, 마약 문제 등도 산적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할 곳도 떠나야 할 자리도 없었다. 당당하게 맞서기도 했으나 번번이 무너지고 실패하기도 했다. 저항은 무모했고 상대는 거칠었다.

내용은 오일샌드 내 여러 공장을 거치며 만난 사람 중심으로 꾸려졌다. 잠시 그곳에서 탈출, 박물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지만, 별무소득(別無所得), ‘상품을 팔 줄 모르는 직원은 필요 없다’는 냉소(冷笑)까지 견뎌야 했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오일샌드가 유일했다. 빚을 갚아야 할 돈이 생기는 곳 말이다. 세계 최대 석유 기업 셸이 합작 투자한 회사, 앨비먼 샌드.

싱크루드 테일링 연못에 빠진 오리를 검사하고 있는 조사원들.

여기서 그녀는 틈틈이 만화를 그린다. ‘오리들’ 기사도 여기서 접한다. 대규모 오일샌드 프로젝트 주관 기업인 ‘싱크루드 캐나다’. 함께 일하던 여자 친구가 이곳 실상을 만화로 그려 신문에 실어 보라고 권유한다. 실제로 한곳에서 제의를 받지만, 원하는 내용은 여성들이 많지 않은 공장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정도인 가십거리였다. 남성이라는 권력 사회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었다.

회사 내에서는 당시 유튜브나 SNS도 겨우 할 수 있었다. 하루는 놀랄만한 영상을 접한다. 1980년대부터 과거 흔히 쓰던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선주민족) 캐나다 원주민 공동체 지도자 중 한 분인 셀리나 하프 씨 증언을 듣게 된다.

“그들이 이곳 우리 땅에서 채취한 석유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물, 공기, 그 외 모든 것을 더럽히고 파괴한다. 동물, 열매, 물고기 등 모든 생계 수단을 앗아갔다. 주민들 암 발생률은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그 땅에 인디언 원주민이 사는 곳도 포함돼 있다. (포트 메케이) 그녀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입주 기업들은 전능한 달러가 최우선이지만 우리는 돈을 먹을 수 없다”고.

작가 첫 장편 그래픽노블 ‘오리들’은 2022년 출간과 동시에 캐나다 공영방송(CBC)에서 주최한 ‘Canada Reads’에서 ‘전 국민이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됐다.

작가는 지옥 같았던 곳을 벗어난 지 십여 년 후에야 이 사실을 쓸 수 있었다. 불평등, 수탈, 폭력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거기서 종종 보던 오로라는 그저 환상이었고 현실은 언제나 암담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