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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원동면] 사이버공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을-신곡..
사회

[원동면] 사이버공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을-신곡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08/30 00:00 수정 2003.08.30 00:00

신곡 마을은 전형적인 농사를 짓는 시골 마을처럼 보였다. 경치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그런 시골마을…….

현재까지 5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배타관 이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된 후 다시 고향인 신곡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65호수에 120여명이 살고 있다는 신곡은 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지내는 인심 좋은 마을이었다.

새로운 마을 - 신곡

신곡 마을은 1022 지방 도를 따라 원동면 소재지에서 3㎞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밀양시 삼량진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또한 경부선 철도 변을 끼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시와 인접하고 있다.

신곡마을은 1979년 7월 1일 당곡 마을에서 분동 되면서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신곡(新谷)"이라 칭해졌다. 주위가 침수지이며, 예부터 기와를 구워내던 마을로서 영산 신씨, 성주 이씨, 경주 최씨 등이 마을을 형성하여 왔다.

오의정 전설이 있으며, 마을 뒤 큰 바위를 장사 같다하여 장사바위라 일컫고 있고, 임진왜란 때 간이승병 훈련장이었던 천태산이 마을을 감싸고, 천태 정사와 수자굴 바위가 계곡폭포 뒤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의 큰 자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천태산 폭포 주변이 공비들의 근거지였던 흔적이 일부 바위 밑에 남아 있다고 한다.

마을 앞 저습지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배광정씨를 위시하여 마을주민들의 공동노력으로 이제는 훌륭한 옥토로 변모했다. 현재 대다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딸기, 수박을 생산하여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철길 너머에는 대부분이 비닐 하우스였다. 지금은 딸기를 심는 시기로 11월이나 12월쯤 딸기를 출하한다고 한다. 이날 만난 배타관 이장도 딸기를 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정보의 바다에서…

신곡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회관 옆에 [정보이용센터]라는 글이 눈에 뜨였다.
“재작년인가.. 만들었죠. 저 안에 컴퓨터 10대 정도가 있는데..보통 농사 정보를 얻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지금을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신곡 마을은 한 발 앞서가는 마을이라고 생각된다. 시골이라고 해서 정보가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농사를 짓는데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날씨라든지, 농산물 시세라든지, 어떤 씨가 좋은지.

미디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 흔히들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이런 정보를 얻는데 유용할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농사를 짓는 곳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신곡 마을은 인터넷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신곡 마을은 홈페이지(http://village.gsnd.net/vil_site/home/vil_8/index.php4)를 이용하여 외부의 사람들에겐 신곡 마을과 특산물을 소개하고, 주민들에게는 마을 소식도 전해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마을 주민인 이철수씨가 관리하고 있었다.

위험 요소들이 아직 남아 있어

경치 좋고 조용해 보이는 이 마을을 가로지는 도로가 있다. 이 도로는 삼량진에서 모래를 싣고 오는 트럭들로 인해 마을은 조용한 날이 없다고 한다. 좁은 도로에 큰 트럭들로 인해 주민들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하기엔 위태로워 보였다.

장년 여름 수해를 입었다는 신곡 마을은 다행히 올해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작년에 수해 복구를 하였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얼마 전부터 제방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 하였다고 한다. 아직 6000평이 보상이 안되어서 감정만 한 상태라서 아직 공사는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빨리 해결되어 공사가 속히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번 공사가 잘 되어서 내년부터는 수해를 입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이장의 마음이 보였다.

신곡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지만, 그 속에서는 새로운 최첨단 사이버 세계가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도 결국 젊은 사람들보다는 60대 어르신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정보이용센터 등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고 있지만, 뒤를 이어나갈 젊은이가 적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김민정 기자
libido79@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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