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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62] 우리는 만날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62]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8/18 09:14 수정 2023.08.18 09:14
우포 따오기/ 정봉채

이기철
시인
2008년 5월 25일,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한중 공동성명을 통해 ‘따오기 한 쌍’을 기증키로 협의했다. 그해 10월 17일, 김해공항을 통해 애타게 기다리던 따오기는 도착한다.

이 순간을 지켜본 이가 있다. 그 자리에 공식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따오기와 이미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 정봉채 사진가. 후진타오 방문 한 달 전 ‘우포늪-나의 렌즈에 비친 자연 늪의 사계’가 세상에 나왔다. 이 사진집에는 따오기가 살만한 세상은 우포늪이라는 간절한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 마음을 빈객(賓客)에게 멀리서나마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스스로 늪이 된 사진가’는 지난 5월, 사진집 ‘우포 따오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사진집에는 우포늪 생명 가운데 ‘따오기’ 모습만 모아 뒀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황홀함이 가득 찬 선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사진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그간 복원센터에서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란 따오기 40마리 중 한 마리가 우포늪에 첫발을 디딘 순간을 촬영했다. ‘소프트 랜딩’ 후 숲을 거니는 ‘첫 모습’이다. 립스틱을 칠한 듯한 긴 부리와 주황빛 머리를 한 따오기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흔들리듯 늪이 손짓하는 가장 살기 좋은 곳을 발견, 조심스레 발자국을 내디딘다.

사진집 ‘우포 따오기’ 표지.

올해로 24년째 우포늪을 가슴에 담고 ‘자연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사진가에게 따오기는 어떤 존재일까? 물론, 이곳에는 다양한 생명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와 고니, 기러기, 오리, 수리부엉이, 참매뿐만 아니라 고라니, 멧돼지, 삵과 담비 등 포식자(捕食者)와 피식자(被食者)가 아슬아슬한 공존을 유지하는 생태계 보고(寶庫)다. 살거나 죽거나 하는 공간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곧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의미다.

그는 생명을 프레임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 포착한 모든 장면은 새로운 해석으로 숨결을 불어 넣어 ‘지독한 끌림’으로 목숨을 바라보는 법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따오기는 사실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겨울 철새다.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한국 전쟁 이후 무분별한 남획, 서식지 파괴, 먹이 감소, 훼손된 환경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74년 12월, 겨울이면 떼 지어 시베리아에서 비무장지대로 날아오는 두루미 떼를 관찰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두루미재단 조지 아치볼트 이사장이 따오기 4마리를 발견한다. 1976년에도 2마리를 관찰했다. 하지만 1979년 1월 18일, 조류학자 원병오 선생과 다시 찾은 그곳에는 한 마리 남은 따오기만 발견됐다, 이것이 마지막 관찰 기록이었다.

따오기를 복원하는 작업은 고되고 어렵다. 창녕 우포늪에서 따오기를 다시 살려내는 까닭은 뭘까? 여기가 물새 살 곳으로 적합하다는 결론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습지에 관한 약속, ‘람사르 협약’이 큰 작용을 했다. 아시다시피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 내륙 습지다. 580여종 식물, 160여종 조류, 42종 어류, 55종 곤충 등이 어울려 사는 훌륭한 서식처다. 따오기에게도 이만한 곳이 없는 ‘살기 좋은 동네’임이 확실하다.

지상에 첫발을 디딘 따오기의 ‘소프트 랜딩’.

사진집 말미(末尾)에 창녕군 우포 생태 따오기 과, 관계자들이 기록한 ‘창녕군 우포 따오기 성공 스토리’는 한 번 눈여겨 읽어둘 필요가 있다.

고서(古書) ‘훈몽자회’에 한글로 처음 등장하는 이름, ‘다와기’는 북한식 표현으로는 ‘당옥이’를 거쳐 이제는 누구나 ‘따오기’로 부른다.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아동문학가 한정동 선생이 쓴 동시, ‘당옥이’가 당선된다. 이후 작곡가 윤극영 선생은 이를 동요로 만들어 익숙한 노래, ‘따오기’는 탄생 됐다.

양산시민신문 이번 칼럼에 정봉채 사진가가 제공한 따오기는 사진을 찍는 대상이 되는 단순한 피사체(被寫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1세기 생태운동을 카메라로 증명’한 각고(刻苦) 현장을 나누려는 의도다.

지난 4월 18일, 집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나는 따오기를 보고 그가 남긴 말 한마디. ‘지금은 소리 내어 울 때가 아니다. 그냥 날아야 한다. 난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날아야 하지!’는 그간 작업을 웅변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남은 과제에 관한 엄숙한 다짐이다.

그가 날마다 듣고 있는 소리, ‘따옥따옥’은 그리움을 넘어 ‘떨림’을 지나 이제 ‘함께’로 남아야 한다. 환경 지표종인 따오기가 멸종하는 날, 인간도 늪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그냥 날아야 한다’

요즘 사진가에게는 큰 기쁨이 하나 생겼다. 올해 초, 그가 사는 집 뒤에 있는 소나무에 따오기 부부가 와서 집을 짓고 5개 알을 낳았다. 가슴 벅찬 나날 아니겠는가? 지켜본다는 말은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이다. 그는 날마다 노래 부른다.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해서 행복에 겨워.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그렇게 사진가와 따오기는 운명처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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