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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중앙동] 수해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곳 - 신기마을..
사회

[중앙동] 수해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곳 - 신기마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08/30 00:00 수정 2003.08.30 00:00
태풍 칼멘호가 할퀴고 간 상처를 안고 이루어진 새마을

비가 흩뿌리는 속에 찾아 간 신기1리는 법정동으로는 중앙동, 행정동으로는 북부동의 16통이다. 번지수 700, 800번지 일대가 바로 신기1리 마을. 북부시장에서 양산대 쪽으로 가면서 경부고속도로 밑을 지나면 만나는 한성아파트가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1957년의 태풍 `칼멘호`때 하천 너머의 신기마을이 수해를 입는 통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를 해 와 마을을 이룬 이주촌이다.

그때 이주해 왔던 신기마을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의 마을 이름을 그대로 옮겨 신기1리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삼성동의 신기마을들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옛 삶의 터전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으리라.

"마을이 형성된 지 50년이 채 안되니까 아직은 이렇다할 전통도 없고 다른 마을들처럼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없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16통 통장 박우택(65세) 씨가 알려줄만한 마을 사연이 없는 것을 자못 민망해 한다.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 전의 옛 터전인 삼성동 신기마을은 1730년대 이조 숙종대왕 당시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뒤에 `여부사`란 사찰이 있어 그 명칭을 따 마을 이름도 `여부리`라 불리다가 이조말엽에는 세터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행정구역 분리 시 신기라는 지명으로 바뀌고 자연부락 단위로 상신기와 하신기로 나뉘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 하신기에서 건너 온 사람들.

"57년도의 초기 이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많이 떠나고 지금은 그 뒤에 들어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젊은이들은 직장 따라 타지에 나가있는 형편이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늙은이들뿐이죠."
아닌 게 아니라 비에 젖은 마을은 적막하도록 고요하다.

박 통장 역시 61년도에 선친을 따라 울산에서 이곳으로 이사해 왔단다. 그때는 박 통장이 군복무 중이던 시절. 나중에 제대를 하고 난 뒤에도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 탓에 정작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 것은 5년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통장직도 지난해에 맡아 이제 1년 정도밖에 안된, 말하자면 신참 통장인 셈이다.

"통장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입니다. 우리 중앙동에 내 위로 한 두어 분이 계실까? 그래도 이 일을 맡을만한 젊은 사람이 있어야지. 다들 일 나가고 바쁘게 사니까…"

그렇게 말하는 박 통장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 육체적 나이가 뭐 그리 대수일까? 마을 일이나 주민들 복지와 관련된 일이라면 팔 걷어 부치고 한 깜냥 해낼 것 같아 보인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잘 건사하여 시집 장가보내고 정년퇴직해 지금은 두 양주분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니 마을 일에 마음을 쏟기가 한결 수월하려니 싶다.

"시내에서 양산대나 북정공단 쪽으로 가는 차들이 우리 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이게 문젭니다. 이 길이 골목길 수준이지 차량통행로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아침저녁 출ㆍ퇴근시간에는 3,4천대의 차량이 이 길을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위험한 것은 물론이고 소음공해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요."

기자가 찾아간 때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런데 지나다니는 차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얼른 말을 잇는다.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차량통행이 통제되고 있어요. 이 마을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통로 BOX를 폐쇄하고 2차선 교량으로 확장한다는군요. 그렇게 되면 교통량은 더 폭증할 것입니다. 우리 주민들 희망은 마을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길은 주민들에게 돌려주고 마을 밖으로 우회도로를 신설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양산시를 비롯, 관계기관에 호소도 해 보았지만 예산타령만 들었을 뿐이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박 통장 직전의 통장이었던 심장섭(62세) 씨가 마을회관에 들어선다.
심 씨는 4대째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 마을의 토박이.
"옛날에는 하천에서 물고기도 잡고 게나 가재도 많이 잡아 올렸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지"
그게 다 생활오수와 공장폐수 탓이라고 못내 아쉬워한다. 어딜 가나 환경훼손이 문제이구나 싶어 마음이 어두워진다.

박 통장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방값 싼 곳을 찾아 흘러들어 온 세입자들이 많다고 한다. 고만고만한 아픔들을 지니고 고달픈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곳 주민들에게 `일등 양산, 일등 시민`이라는 양산시의 캐치프레이즈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그래도 마을회관에 딸린 작은 방에서 뭔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장성한 자식들 바라보며 마음속에 밝힌 희망의 등불 때문이려니…….

전영준 기자
johneut@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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