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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文化人①] 서각인(書刻人) 민영기 씨..
사회

[양산文化人①] 서각인(書刻人) 민영기 씨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08/30 00:00 수정 2003.08.30 00:00

민영기- 올해 47세의 이 사람을 아는 이는 흔치않다.

강원도에서 서울을 거쳐 전국을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던 민영기씨가 이곳 양산에 둥지를 튼 지도 1년이 넘었건만 양산에 민영기라는 서각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의 작업실은 웅상읍에 있는 효암고등학교 부속건물에 딸린 작은 공간.

여기서 그는 세상사 돌아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조각칼을 들고 나무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기야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서각(書刻)이란 것조차 생소할 터이니 서각인을 알 턱도 없겠다.

작업실 곳곳에 널려있는 작품들이 문외한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입문한지 얼마나 되는지부터 물어봤다.

"87년에 시작했죠. 그 이전에는 전기ㆍ잔자제품 수리업을 했습니다."

`전기ㆍ잔자제품 수리업이라?` 뜻밖이다 싶은 기자의 반응에 자신도 겸연쩍게 웃는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단다. 퓨즈 하나만 갈아 끼우면 될 작은 고장도 큰 고장처럼 속여 부당이득을 챙기는 수리업계의 관행이 싫었던 것이다.
"정직하게 하면 돈이 되지 않고 남들 따라하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고…"


서각에의 길을 열어 준 큰아버지

그를 서각인의 길로 안내해 준 이는 그의 큰아버지 민병산 선생.
60년대 이후 80년대 말까지 `관철동의 디오게네스`로 불리며 수많은 철학 에세이와 인물전기 등을 발표한 당대의 명 문필가 민병산 선생이 바로 그의 큰아버지였던 것이다.

"너는 재주가 남다르고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니까 서각을 하면 좋을 듯 하네"

지병인 천식으로 병상에 누워 계신 큰아버지를 찾아뵌 어느 날, 민 선생은 집안의 장조카인 민영기에게 거의 강요하다시피 서각을 권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자유인으로 사신 큰아버지는 좀처럼 누군가에게 강요를 하지 않는 분이신데 그처럼 간곡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분명 깊은 뜻이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서각인의 인생행로가 어느새 16년.

한참을 망설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다.


-생계는 해결됩니까?

"생계에 매달리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마음이 내켜야 작품이 나오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한달이라도 손을 놓습니다."

거침없는 대답이 기자를 민망케 한다. 공연한 질문을 했나 싶다. 서각의 재료인 나무는 대개 3,4년 정도 말려야 하는데 상업적인 생산을 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란다. 더구나 그가 작품의 원본으로 삼는 서화들이 거의 큰아버지의 유품들이라 그것으로 돈벌이를 한다는 것도 꺼림칙한 일이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작품을 탐내는 사람이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넘겨준단다.

그동안 작품전시회를 가져보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손사래부터 젖는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100% 완벽한 작품은 없어요. 남들은 모를지 몰라도 제 자신은 작은 흠 하나라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무슨 염치로 전시회를 열 수 있겠습니까? 우선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안돼요."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한 작품이 모아지면 생애에 한번 쯤 전시회를 가져볼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시 때때로 작품전시회를 여는 남들 흉내는 내지 않겠단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는 아직껏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를 서각인의 길로 안내한 큰아버지 민병산 선생이 결혼을 하지 않고 식솔도 없이 60평생을 영원한 자유인으로 사신 것을 보아 온 그로서는 아마도 큰아버지의 그 거침없고 자유롭던 삶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애오라지 서각 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이느라 외롭고 고달플 겨를도 없었을까? 불편한 몸으로 가족도 없이 지나 온 세월이 꽤나 버겁고 신산스러웠겠다 싶은데 겉으로 드러난 표정은 밝고 해맑아 그와 함께 한 두어 시간 내내 기자의 가슴은 따스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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