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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책과 더불어]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
사회

[책과 더불어]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09/06 00:00 수정 2003.09.06 00:00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지난 일요일은 벌초하는 날이었다. 새벽밥 먹고 출발했지만 끊임없는 벌초행 차량들로 1시간 30분 거리는 3시간 4시간, 무한정 길어지고 있었다. 흔히들 도로를 혈맥(血脈)에 비유하는데 그러자면 이 차량들은 피톨들이던가. 조상에게로 회귀(回歸)하는 후손이라는 피톨들…….

무료도 달랠 겸 이리저리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데 전유성씨가 낭독하는 사연 하나가 들린다. 귀로만 들은 사연이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편지를 쓴 이는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3남매의 가장으로, 현재 가족들 모두와 떨어져 홀로 벽지(僻地)의 토목공사장에서 중장비를 운전하는 분이었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 중장비를 운전하며 고국의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했고, 귀국 후 집 한 칸 마련하랴 장성하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랴 피땀 흘렸을 필부(匹夫)의 삶이었다. 뒤늦게 집을 발판으로 시작한 사업을 끝내 일으키지 못하고 모두들 은퇴하는 나이에 다시 중장비 운전대를 잡았단다. 제목 짓자면 "남자의 일생"이랄까.

남자의 일생.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없이 신혼을 시작한 남자, 몸 하나 믿으며 처자식을 부양하고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해 피땀 흘리는 남자, 세상사 부침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식들 결혼시키고 은퇴를 바라보는 지금 다시 원점과 다름없이 벽지에 홀로 남겨진 남자.
 

중국 작가 위화가 지은 <허삼관 매혈기>를 `남자의 일생`이란 틀 속에 밀어 넣어본다. 아하!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 평했던 서문이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허씨 집안 셋째로 태어난 주인공의 이름이 삼관이요, 그가 일생동안 중요한 삶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던 이야기가 매혈기이다. 허삼관이 처음 피를 파는 길에 동행한 근룡은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구요. 땅 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라 한다. 피의 대가로 받는 돈은 그들이 반 년 이상 땅을 파도 벌지 못하는 거금이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생애 처음 피를 판 허삼관은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거라는 것을 안 셈이지요. ……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써 버릴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쓰도록 해야지요."라 다짐했고, 그는 과연 공장에서 일한 대가로 생활을 영위하는 한편 장가를 들거나 세 아들들에게 닥친 큰 문제를 해결해야할 `큰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았다. 다만 60을 넘은 자기 자신을 위해 매혈하고자 한 마지막 시도만 실패할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이다. `피`가 철철 넘치는데도 읽다가 보면 소리내어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물론 이 책을 소개하면서 작가 위화를 `중국을 대표하는 반체제 작가`라거나 옮긴이 최용만의 `노동문예운동연합` 이력을 들먹이며 격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라면 몰라도 이 책만큼은 저러한 이력이 소용없다. 오히려 오독(誤讀)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어느 비평가는 이 책은 결코 `평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그리고 있으며, 피를 판 대가인 `돈`은 곧 `힘`이므로 이 돈을 갖지 못한 상대에 비해 무엇인가를 획득하는 상황인 한 상대에 대한 `폭력`이라고 쓴 것을 읽은 적 있다.

아니다. 작가 스스로 서문에서 "(이 책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쓰고 있지 않은가. `남자의 일생`이라는 틀과 `휴머니즘`이란 코드를 병치시켜보면 이제서야 작가 서문에 고개 끄덕이며 동감하게 된다. 피땀 흘리는 남자의 일생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즘이다. 허삼관이 피를 팔 듯 세상 모든 남자들이 피땀을 `판다`. 서구의 남자들도 중국의 남자들도 한국의 남자들도 모두 가족에 대한 책임만큼은 공평한 것이다. 더욱 일반화시킨다면 `매혈`을 `책임진다`는 행위로 대치시킬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도 생활고를 비난한 20대 가장이 6개월 난 아들과 동반자살 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책임질 줄 모르는 폭력이 아닐까.
 

허삼관은 매혈을 함으로써 남자의 일생을 살아간다. 이 시대 모든 남자들도 피땀 흘려 책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들의 아버지, 그 아버지들도 그러하셨음을 알겠다. 잦은 비로 키보다 더 자란 풀을 베며 벌초하는 손길에 더욱 정성을 다하는 이유이다. 곧 있을 한가위 귀향길에 이 책과 함께하면 어떨까.

시민기자 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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