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읍 평산리의 아파트촌에 삶의 둥지를 틀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화가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냥 그림이 좋았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미술부에 들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보니 대학은 당연히 회화과(경성대)를 선택했구요."
자연 그대로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이윽히 바라보는 그의 형형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수채화라는 표현양식으로 그려내는 그의 그림들은 우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격조를 갖추고 있어 단아하면서도 웅숭깊다.
"이런 자연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계열의 그림들은 얼른 보기에 쉽게 그려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신의 섭리까지 찾아내야하므로 마냥 쉽기만 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고…"
신의 섭리? 그렇다면 화가는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마침내 신과의 교감을 이룬다는 말 아닌가?
말뜻을 못 알아들은 양, 짐짓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의 삶에서 과연 미술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요?
"사람은 동물과 달리 의식하는 존재입니다. 동물들은 먹고 자고하는 본능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지난 날, 개발독재시대에 우리 사회를 지배한 화두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였다. 그 때의 그 잘 살아보자는 말은 오로지 배불리 먹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제 좀 휜 허리가 펴진 오늘, 비로소 `삶의 질`을 논하기에 이르렀지만 지금 대두되고 있는 `삶의 질` 역시 물질적으로 많이 가지는 데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화가 심수환 씨의 말은 미술을 통해 미적인 감성을 계발함으로써 삶이 풍요롭게 된다는 말이겠다. 그것이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의 질`과 연관된다는 뜻이리라.
-여전히 미술전시관에는 찾는 발길이 뜸한 것 같던데요.
"그것은 우리 화가들의 문제지요. 시민들이 미술을 비롯한 예술전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예술행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사람들이 `시`를 멀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책임이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떠 오른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예술가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예술가가 지닌 재능이란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지식축적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제 스스로 취득한 특별한 능력쯤으로 여기면서 문화적, 사회적 구조 속에서 미적기능을 담당하는 부속인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을 미화시키고 격상시킴으로써 일반인들이 미술에 보다 쉽게 접근하는데 오히려 방해를 해 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술행위라는 것은 결국 역사 속에서 물려받은 것을 환원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지요."
알량한 재능만 앞세우고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방기하고 있는 모습이 언짢아 그는 이런 저런 단체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미술관련 단체는 `부산수채화협회`
또 하나, `부산교육연구소`도 그가 열정을 불태우는 활동공간이다. 이 연구소의 `이사`인 그는 여기서 `미술교육팀`을 이끌면서 교육현장에서의 미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좀 민망한 지적이지만 교육일선에서 미술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미술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많은 경우에 미술교육의 참 목적을 잘 알지 못하여서 미술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소수의 어린이들만 배우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어른들의 그림처럼 보기 좋고 예쁜 그림만이 제대로 된 그림인양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림의 참 목적은 재능과는 별개로 모든 어린이가 기초학습의 일환으로 문자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미술교육은 그려진 결과가 얼마나 잘 그려졌는가 하는 기능적인 것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또 생각한 것을 제대로 잘 표현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초등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2학년시기의 어린이는 기본적인 문자를 익혀서 읽거나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문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는 서툽니다. 이런 점에서 이 시기의 미술교육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감성적인 표현이나 자신의 의지조절, 문제해결능력 등을 키워주데 있어서 참으로 훌륭한 학습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요즈음 일선교사들에게 미술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인다.
-아무래도 창작활동에 지장이 많을 텐데요.
"주변에서 그런 지적들을 많이 하지요. 사실 저도 좋은 작품을 많이 생산하여 화가로서의 일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요. 그러나 미술교육의 왜곡현상을 바로잡는 일도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이 일은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하는 옷 한 벌 사는 데는 망설이지 않으면서 그림 한 점은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애오라지 그림 사랑으로 살아가는 화가 심수환.
그런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즐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림은 화가들이나 일부 미술애호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연스레 미술전시관을 찾고 집안의 벽에 좋은 그림 한 점 걸어 놓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 아닐 런지요"
휴가철에 교통체증이 심한 것도 우리 사회 놀이문화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면 한쪽으로만 몰리는 인파가 자연스레 분산 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영어를 못하면 부끄러워 할 줄 알면서 그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회 분위기가 걱정입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 오는 내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영어보다는 미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