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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한글날을 맞으며
사회

한글날을 맞으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0/11 00:00 수정 2003.10.11 00:00
"557. 자랑스러운 우리글, 한글에 아로새겨진 나이테"

557. 이는 자랑스러운 우리글, 한글에 아로새겨진 나이테다.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맞지 않은 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함이 많음이라. 내 이를 불쌍히 여기어 새로 스무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사용함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557년 전(1446년), 세종임금께서 이런 큰 뜻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이 바로 한글이다.
그러나 한글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한글의 나날이 우리네 겨레 살이 만큼이나 고달프고 힘겨웠다 싶다.

한글이 세상에 빛을 본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글 557돌의 나이테에는 온갖 업신여김과 억누름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애초에 `훈민정음`이라 이름 했던 것을 상말을 적는 글자라는 뜻으로 언문(諺文), 언서(諺書)라고 불렀던 것은 글께나 한다고 목에 힘을 주던 그 때의 시건방진 학자, 선비들의 짓이고 그 뒤에도 암클이니 아햇글이라 부르며 하찮게 여기다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따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라가 차츰 근대화되어가면서 뜻있는 이들 사이에 민족의식이 돋아나고 이에 따라 우리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그 이름도 `국문`으로 자리 잡는 듯하더니 1928년을 지나면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굳혀졌는데, 이 이름은 `한힌샘 주시경`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글`이라는 말이 지니는 뜻이 `한(한국)나라의 글`, `큰 나라의 글(큰클)`,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이렇듯 한글이 시달리고 나부껴온 것은 지난날 나라가 힘이 없고 겨레붙이들이 다 어리석고 못나서 그랬다 하자.
그렇다면 나라의 힘도 꽤 커지고 저마다 밥술께나 들고 있는 오늘날은 어떠한가?
두말할 것 없는 일.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말글살이 속에서 아직도 일본말 찌꺼기가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도 그렇고 한자말은 여태껏 우리 말글살이의 주인노릇을 하는데다 해방 뒤로는 서양말까지 마구 치고 들어와 우리말을 사정없이 어지럽히고 있으니 이를 두고 어찌 우리의 나랏말씀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랴.

이리 보면 `언문의 시대`는 한결같다 싶다. 한문과 일본말의 굴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이른바 국제어라는 이름의 영어가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큰 무기라며 우리 말살이의 안방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영어로 적힌 상품은 더 본새가 나는 물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기업의 이름도 영어 이름이라야 더 커 보이고 더 잘나 보인다. 한글로 이름을 쓰거나 부르면 어쩐지 촌스레 보이고 낯설다. 그만큼 우리글 우리말은 보잘 것 없어지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국회의원이 "한자 가르치는 일과 한자 쓰는 일을 크게 늘리자"며 국회에 `한자교육진흥법안`을 내놓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으로부터 올해의 `우리말 으뜸 훼방꾼`으로 뽑힌 바도 있거니와 우리말을 짓누르고 어지럽히는 이들은 제 깐에는 많이 배운 줄로 알고 다른 사람들의 윗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요사이는 인터넷이 우리네 삶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여기서도 한글이 마구 구부러지고 찌그러트려지고 있어 생각 깊은 이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말이 아주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사뭇 가슴이 타들어가지만 그래도 깨어있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한글사랑 모임들이 있어 내 나라 내 글을 살리고 지키려고 애들을 쓰고 있으니 그나마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남 탓할 게 뭐 있으랴. 나라고 쉬운 양 서양말 주워다 쓰고 한문글자 따위를 함부로 섞어 써 한글을 더럽힌 일은 없는지 깊이 뉘우쳐 볼 일이다.
나름으로 글 쓰는 일로 한살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부터라도 내 나라 내 글을 아끼고 보살펴 우리의 글살이 말살이를 한층 넉넉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되겠다고 다짐해 보는 2003년 10월 9일, 557돌 한글날 아침의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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