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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웅상읍] 더불어 사는 이웃사촌 -원진마을..
사회

[웅상읍] 더불어 사는 이웃사촌 -원진마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0/18 00:00 수정 2003.10.18 00:00
주변 공장들과의 갈등해결이 급선무

원진마을- 다들 원진마을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곳에 원래부터 `원진`이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년 전, 이곳에 `원진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 `원진마을`

행정구역상 여기는 웅상읍 소주리다.
아파트 2동에 세대수 269세대. 주민 수는 900명 정도란다.

위로는 백동마을이고 오른쪽으로는 장백아파트다. 대단위 아파트를 옆에 끼고 위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해 보이나 마을이 앉은 자리는 더없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다만 주변에 MSC, 명신한천, 청정냉동 등 공장들이 둘러싸고 있어 소음과 고약한 냄새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문제다.

기자가 찾은 날도 이 마을 이장 이순옥(52) 씨와 부녀회장 장예순(41) 씨가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와 바로 이웃해 있는 MSC(식품첨가물업체)를 찾아 한바탕하고 오는 중이었다.

"MSC에서 지하 1층 지상 6층의 연구실을 짓고 있는데 그 건물이 우리 아파트 2동 12, 13라인과 마주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연구실의 벽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서 문젭니다. 아파트 안이 다 들여다보이거든요. 거실은 물론 화장실 안까지 다 보입니다. 그래서 사생활보호가 안되니 아파트 쪽 벽면은 유리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우리 주민들의 요구사항입니다." 이순옥 이장의 말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요구는 씨가 먹히지 않는단다. 건물 외관을 고려한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지금 와서 설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공장 측의 주장.

그렇다면 주민들의 사생활은 침해를 받아도 좋으냐고 항변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답에 주민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공사기간 동안에 발생한 분진과 소음은 그런대로 참았습니다. 이웃간에 자꾸 다툴 수도 없고 공사만 끝나면 괜찮겠지 하면서 견뎌냈는데 벽면을 유리로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내 집안에서 옷 하나도 제대로 벗을 수 없고 화장실 출입도 자유롭지 못할 판인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부녀회장 장예순 씨가 분을 삭이지 못한다.

사정이 딱하게 됐다. 공장 측과 얘기가 잘되어 원만히 해결되었으면 좋으련만…
"이런 일만 아니면 여기는 참 살기 좋은 곳입니다. 주변 전망도 좋고 식수로 쓰는 지하수는 물맛이 그저 그만입니다." 마을 자랑으로 이장님 입에 침이 마른다.
"MSC만 문제가 아닙니다. 주변 공장에서 풍기는 냄새나 소음이 말이 아니죠. 어떨 때 밤중에 나가보면 시커먼 연기를 마구 뿜어내기도 하구요." 부녀회장의 하소연이다.

그렇다고 마을 일에 협조를 하느냐 하면 그도 아니어서 주민들의 마음은 더 서운하다. 어쩌다 마을행사나 경로잔치를 하려고 협조를 요청하면 아예 모른 척 한단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 공장을 차려 돈을 벌어먹고 있으면서 주민들에게 어찌 그리 매몰찰 수 있는지…" 같이 있던 한 부녀회원의 푸념이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여기서 뼈를 묻으려는 생각들이었는데 지금은 이사를 나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다른 누군가가 거든다.

이런 고충 가운데서도 마을 주민들 사이에 화합과 단결이 잘되고 인심이 좋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

연 1회 여는 경로잔치 때는 마을 온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인단다. 다들 형편이 넉넉지 못해 크게 대접은 못해 드리지만 힘자라는 대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어른들을 모시는 일을 큰 보람과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어 많이 참석은 못하지만 3개월에 한번씩 갖는 부녀회는 이웃사랑을 다지는 모임.

마을 주민이 대부분 부산에서 이사를 와서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원진마을의 본래 이름은 백동마을이었는데 6년 전에 백동에서 분동되어 독립했다. 백동마을의 그 전 이름은 백홈마을.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들어 온 백씨(白氏)들이 모랫들에 농사를 짓기 위해 잣나무로 만든 흠 100여개를 이어 농업용수로 사용한 것에서 백홈이라는 마을이름이 붙여졌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비록 마을의 역사가 일천하더라도 오늘의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10년, 2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흘러 마을의 전통과 풍습이 만들어 지면 먼 훗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또한 옛 전설을 노래하게 되리라.

다만, 오늘 치르고 있는 이웃 공장들과의 갈등이나 우선 잘 풀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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