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최장기수인 김선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택]이란 제목의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이 땅에서는 더 이상 그 무엇도‘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51년 25세의 나이로 체포된 김선명은 45년이 지난 1995년 석방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영화는 그 45년의 세월을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밀어 조밀하게 때로는 무심한 시선으로 굵직굵직하게 넘어간다. 그 중에서 영화가 가장 공을 들여 보여주는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새롭게 부임한 전담 반장 오태식과의 사건들이다. 정치범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오태식은 급기야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을 가하기 시작하고 끔찍한 고통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김선명의 동지들은 하나 둘 자신들의 선택을 철회하거나 혹은 죽음을 선택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지, 가족들의 눈물어린 호소에 전향을 결심하는 동지들 속에서 김선명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세월들이 쌓여서 어느덧 45년을 이룬다.
영화는 어떠한 정치적인 발언도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맹목적으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정치범들의 모습도 비치지 않는다. 반공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영화는 그저 감옥에 갇힌 한 인간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들이댄다. 처참하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절망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며 양심을 지켜내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인간의 따뜻한 목숨 앞에서는 사상도 이념도 모두 부질없음을 영화는 말한다. 이념이나 사상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지켜온 양심과 신념의 문제였음을 영화는 애써 힘주지 않고도 잘 말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감옥 생활은 충분히 가슴 아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핏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장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관객들도 자연스레 희망을 품게 되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이다. 어렵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목에 힘주지 않고 잠깐씩 쉬어가는 감독의 연출은 배우들의 호연과 공명을 이루며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선명이 출감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그 당시의 자료화면을 삽입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야 말로 영화보다 훨씬 영화적인 현실의 힘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영화가 색 바랜 흑백 필름으로 넘어갔을 때 느껴지는 리얼리티는 지금까지 보았던 장면들이 그저 먼 나라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음지에서 일어났던 일임을 확실히 깨닫게 한다. 특히 45년 만에 상봉한 김선명의 노모가 잘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김선명을 끌어안으며 "이놈아, 어른 말을 안 들으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여."라고 나무랄 때 영화를 보는 이들은 최후의 이성적인 시선마저 거두고 웃고 울게 된다.
빠르게 사회가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선택 또한 가벼워지게 되었다. 오래 생각할 틈 없이 선택해야 하고 대신 그 선택의 무게나 대가는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김선명은 무슨 이유로 45년의 세월을 한 가지 선택으로 고통 받아야 했을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떠돌던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나갈 무렵 던진 김선명의 대사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선택은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이다."
시민기자 전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