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정득 나주 정씨(羅州 丁氏)가 부친을 등에 업고 김해에서 낙동강을 건너 피난 차 홍룡 폭포 갯들 밑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현재의 대석마을로 내러와서 정착을 한 게 이 마을이 생기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마을 이름은 돌실이었다고 한다. 그 후 담양 전씨, 김해 허씨 등 3씨족이 와서 살았다고 하며, 김해 김씨, 영일 정씨, 밀양 박씨, 안동 권씨, 동래 정씨, 김영 김씨 등이 입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석마을 인근에는 홍룡 폭포, 홍룡사 등 계곡의 물이 맑고 천성산 기슭의 원효암 등으로 사계절 관광객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이곳을 부락민의 소원 성취와 마을 재난이 없기를 비는 제당으로 정하였다. 여름에는 나무그늘이 시원하여 동민들은 물론 유람객들이 쉬어가기도 하여 동민이 이곳에 태를 설치하여 그 이름을 일심대라 하였다.
일심대 앞에는 성산와가 있어 마을 진입로가 되고 있다.
마을 청년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차영(청년회장, 43)씨를 만나 마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전형적인 자연 마을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죠. 미나리도 많이 재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우스로 사철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홍룡사와 홍룡 폭포가 있고 천성산이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이 많이 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형적인 자연 마을입니다."
농사를 짓는 자연 마을이었지만 참으로 잘 가꾸어진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저기 보이는 예쁜 집들과 잘 닦아진 도로, 가지런한 논밭 등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지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대석 마을은 그냥 보기엔 잘 가꾸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처럼 보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풍성함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