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라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지러운 세상을 비관하여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에 이 곳까지 발길을 옮겨 시를 짓고 놀던 임경대. 오래전 그 옛날의 자취를 더듬어 이곳 향민들이 오늘에 새로 정자를 세우고 최치원 선생이 여기서 읊었던 시 <임경대>를 걸어두고 기리고 있다. 고운 선생이 걸어왔을 오솔길은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가 되어 지나는 차들은 그 연유를 모르고 무심히 지나친다. 임경대는 최공대(崔公臺)라고도 하며 그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의 옛 이름은 황산강(黃山江)이다.
해동의 문장가로서 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던 고운 선생이 이곳에 당도하니 저만치 강물이 맑고 깨끗한 것이 마치 천하의 거울을 대함과 같았다. 이를 일러 임경대라고 부르고 칠언절귀의 시 한수를 남겼으니 이는 가히 낙동강 문학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臨 鏡 臺]
煙巒簇簇水溶熔/鏡裡人家對碧峰/何處孤帆飽風去/瞥然飛鳥杳無踪
묏부리 웅긋중긋 강물은 늠실늠실/집과 산 거울인 듯 서로 마주 비치는데/돛단배 바람 태워 어디로 가버렸나/나는 새 어느 결에 자취 없이 사라진다.(노산 이은상 역)
임경대를 오르는 들머리에 요산 김정한의 문학비가 서 있어 시대를 뛰어 넘은 두 문학 거두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형국이니 이 또한 이채롭다 아니할 수 없겠다.
임경대 고갯길 아래에 있는 화제마을이 부산이 낳은 위대한 작가 요산 김정한의 대표작 <수라도>의 무대라 한다. 화제마을은 요산의 처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이 길 밑으로 철길과 나란히 나 있던 옛 고갯길은 <수라도>의 주인공인 여장부 `가야부인`이 명지에서 시집을 오던 길이었고 `가야부인`의 시부인 `오봉선생`의 호는 바로 오봉산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