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는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하여 거의 폐사가 되었으나 1983년부터 영규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허물어져 가는 대광전과 응향각이 있었다고 한다. 신흥사 경내에는 대법당 대광전이 있고 서쪽에 침묵당, 동쪽에 칠성각, 의향각이 있는데 대광전 이외에는 모두 근래의 건물이다.
신흥사 대광전은 1992년 1월 15일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13.3m), 측면 3칸(9.5m), 건축면적 128.4㎡이다. 다포계(多包系)건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1988년 부분적으로 해체 보수할 때 종도리(宗道里) 바닥에서 `順治十四年(1657:효종 8년) 四月十七日記`라고 쓰인 묵서명(墨書銘)의 상량기(上樑記)가 발견되어 건립연대가 밝혀졌다고 한다.
건물의 좌우 측면 벽의 내ㆍ외부와 전ㆍ후 포벽(包壁)의 내ㆍ외부에는 17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ㆍ신장상ㆍ꽃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또 건물 내부에는 건립 당시의 단청이 그대로 남아 뛰어난 색채와 훌륭한 문양을 전하며, 특히 고주 머리 부분에 그려진 32채 여래상은 그 유례가 없고 화풍과 필치도 뛰어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빼어난 자연과 맑은 물과 대광전 뒤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신흥사의 운치는 한결 돋보인다.
가야진사 (伽倻津祠)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가에 가야진사가 있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민속자료제7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로 된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는 용당리의 비석골에 있었으나 196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가야진사에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양주 도독부에 있던 한 전령이 대구로 가던 길에 이 곳 산막에서 하루 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전령에게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첩용을 죽여주면 꼭 은혜를 갚겠다면서 애원하였다. 전령은 용의 딱한 사정에 동정심이 생겨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다음 날 용이 시키는 대로 칼을 빼들고 남편용이 첩을 데리고 논다는 용소에 가서 바위틈에 숨어서 용 두 마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있다 갑자기 강물이 끓어오르면서 용 두 마리가 불쑥 솟아오르니 이를 보고 겁에 질린 전령은 다급한 김에 칼을 뽑아들고 그 중 한 마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칼이 빗나가 수용을 죽이고 말았다. 남편용의 죽음에 슬피 울던 용은 약속은 지키기 위해 용궁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용과 전령의 자취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이 마을에는 재앙이 그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용이 놀던 용소가 보이는 곳에 사당을 짓고 세 마리의 용과 전령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현재의 사당은 1406년(태종 6년)에 세워진 것이며,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또 기우제도 이곳에서 지냈으나 매년 봄에 가야진 용신제(경남무형문화재 19호)를 지낼 때 함께 지낸다. 사당 안에는 제상과 머리 셋 달린 용(龍)을 그려 놓은 액자가 있다.
수암사와 불음 폭포
토곡산에 위치한 수암사는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근처까지 차가 다닐 수 있지만 꽤 비탈진 길을 달려야 만날 수 있다. 수암사 곁으로 산 정상에서 내려흐르는 폭포가 바로 불음폭포이다. 단풍과 어우러진 폭포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원동 자연 휴양림
1993년 개장한 원동 자연 휴양림은 1일 수용인원이 1,400명이다. 영남의 알프스라 하는 가지산, 신불산, 영취산, 오봉산, 천태산, 토곡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민간 휴양림으로 동쪽 능선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계곡의 풍부한 수계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 토곡산 중턱의 물풍지폭포 등이 장관이다. 등산로를 따라 토곡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과 심산유곡이 내려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