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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전통악기를 만드는 예인(藝人)..
사회

전통악기를 만드는 예인(藝人)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1/01 00:00 수정 2003.11.01 00:00
가야금 등 현악기 제작 30년
공방<가얏고>주인장-범청 이석희

우리의 전통악기가 태어나는 곳. 한국 전통악기 공방 `가얏고`
하북면 백록리 716번지, 바람에 사각대는 대숲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작은 집 두 채. 바깥채 처마 밑에 걸려있는 喜樂亭이라는 당호가 눈길을 끈다. 이 집의 주인장이 오늘 기자가 만나고자 하는 전통악기를 만드는 예인 범청 이석희(凡靑 李石熙)다.

일반인들이야 `가얏고`도 모르고 `이석희`라는 이름도 잘 모를 수 있겠지만 국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얏고`도 `이석희`라는 이름도 두루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가 영남에서는 거의 유일한 전통악기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악에 입문하는 새내기에서부터 악기를 새로 장만하는 고참 연주자까지 `가얏고`에서 나온 악기를 구입하는 것이 상례다. 그렇다고 `범청`의 고객이 영남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그 어느 누구의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석희만의 남다른 소리가 나온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반드시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연주자들 중에는 이석희만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게 마련. 그래서 그의 고객은 경향 각지 어디에나 다 있다.

공방의 이름을 가야금의 옛 이름인 `가얏고`라고 붙인데서 보듯 그가 제작하는 것은 주로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다.

올해 49세, 쉰 고개를 바라보는 범청 이석희. 그가 이 길에 들어 선지도 어느새 30년이 되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향 고성에서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70년대 초, 그때는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행여 살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간 서울에서 우연히 `서울시립직업훈련원`을 찾게 된 것이 이 길에 들어 선 계기가 되었습니다."

직업훈련원 공예과를 졸업할 무렵, 그가 실습을 나갔던 곳이 마침 전통악기 제작소였던 것이다. 하기야 전통악기제작도 넓은 의미에서의 공예에 속하는 것일 터이니 방향이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 이석희에게 이 새로운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영남출신의 촌뜨기에게는 모든 것이 난관이고 장애물이었다.

그러기를 10여년. 악기를 다루는 기량도 제법 무르익고 악기 제작자로서의 위치를 어느 정도 굳혀갈 무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일이 너무나도 춥고 배고픈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생산직이나 기능직에 진출해 일정한 급여에 보너스까지 받는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을 발견한 이석희.

예인의 길이 아무리 꿈을 먹고사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생활인일 수밖에 없는 그는 잠시 한눈을 팔아본다. 그렇다고 전혀 생소한 딴 세상을 찾기도 쉽지 않은 일. 이 즈음 마침 부산여전(현 신라대 전신) 응용미술학과에 전통악기 기능을 전수하는 자리가 나 얼마간 강단에 서 보기도 하면서 2, 3년의 공백기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의 예기와 재능을 아끼는 한 친구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때는 마침 88올림픽을 앞둔 때라 우리 전통악기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조짐이 보이던 터라 못이긴 척 친구의 권유를 따른다. 그렇게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이제는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일가를 이루었다.

-악기를 오래 다루다 보면 자연히 연주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악기를 제작하는 사람이 반드시 다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가야금과 아쟁을 조금 공부했습니다. 그동안 두어 차례 공연도 가졌고요. 요사이는 취미로 대금을 배우고 있지요."

-서양악기와 우리악기를 구별 짓자면?
"서양악기는 흔히 수학적이라 하지요. 이를테면 피아노로 `도`를 치면 어김없이 `도`음이 나옵니다. 반면에 우리 악기는 연주자가 자기 나름으로 내는 소리에 따라 제 각각의 소리를 냅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음악은 완성된 음악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음악은 완성이 없습니다.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무한대의 음악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우리 음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음악에는 연주자의 철학과 혼이 깃들게 마련입니다."

그의 방에는 천 오백년 전의 원형을 살려 제작했다는 가야금과 `산조`를 연주하기에 적합한 폭이 좁은 가야금, 서양음악도 연주할 수 있고 서양음악과의 협연도 가능한 25현 가야금 등 여러 종류의 가야금이 있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우리 악기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너무 서양 것에만 치우치지 말고 우리 전통악기 제작이나 전통음악 연주에 뛰어들어 우리 음악의 명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범청 이석희-

한때는 이 길에 들어 선 것을 후회한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사람의 흔들림 없는 예인으로서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해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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