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가를 밝혀 주는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사기곡, 오동곡(옷나무골), 샛갓 등에서 나오는 기와장, 토기편 등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초기 곧 신라 초부터 사람들이 주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문헌상으로는 분성배씨(盆城裵氏) 족보를 살펴보면 고려말(1,400년경)에 분성 배씨가 이 지역에 입촌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마을은 조선중기(1,700년경) 이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대에 양산천 개수공사로 메기들이 조성되면서 특히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자손 대대로 여기 가촌 본리 마을에서 살았다는 백성순씨(가촌본리 77세)를 만나 가촌 본리마을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입촌 성씨의 순서는 분성 배씨, 다음은 문화 류씨, 부여 백씨 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촌 본리 마을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가자방(加資坊, 佳資坊)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가자(加資)는 조선시대 국왕이 품계를 올려 준 것이며, 가촌(嘉村,佳村)은 아름다운 마을, 착한 마을을 뜻한다고 하더이다."
가촌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 많이 나온 문지(文地)로서 더욱 아름답고 착한 마을을 만들어야하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는 말로 여겨진다.
"이번 전국 체전에서 100m 은메달을 딴 박수진군, 청소년 축구대표로 활동중인 백승민, 지금 국가가 보내 줘서 미국 유학중인 판사 백강진씨도 다 여기 가촌 본리 마을 출신입니다."
백성순씨는 마을 자랑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금의 본리마을과 신기마을 사이의 밭(약 5만평)은 개인주택 및 연립주택용 주택지로 개발되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마을 뒷산아래 밭들도 택지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 마을의 일부(약 30호)와 들판도 물금신도시의 일부로 들어가게 되어 급속히 옛 모습을 많이 잃어 가는 것을 백성순씨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