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화(鄭震和)선생- 물금읍이 읍으로 승격되기 이전인 1983년 1월부터 89년 10월까지 물금면 면장을 역임했다.
거실의 벽면을 메우고 있는 책장에 각종 향토사료집과 고서들이 그득한 것으로 보아 이 어른이 예사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미루어 알겠다.
"오늘날 다들 문화유적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에 소홀해요."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소중한 옛것을 함부로 없애버리는 오늘의 세태를 꾸짖는다. 그리고 이미 훼손된 유적을 다시 복원하는 데도 지역 원로들의 자문을 구하고 정확한 고증에 따라 바르게 되살려 내야할 것이란다.
선생은 이미 역사 속에 묻혀버린 황산역에 대한 자료도 찾아 공개한바 있고 98년도에는 물금읍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지금은 양산의 독립운동사를 집필 중인데 2~3년 후면 빛을 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금읍지 집필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
"34년에 대홍수가 나 물금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어. 그때, 철도가 유실되었는데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요. 당시의 신문을 들춰봐도 관련 기사가 없으니 제방이 붕괴되고 철도가 유실된 날짜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거야."
그렇다고 그걸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던 중 마침 그 수해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게 되고 그이에게서 제삿날을 알아내어 모월모일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철도청의 철도사를 조회하다가 그 사고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내고 미리 알아두었던 제삿날과 대조해 보니 딱 하루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제삿날은 망자의 살아있던 날을 치는 것이니 철도청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이를 철도유실의 사고일로 잡은 것이다. 역사기록에 임하는 사가(史家)의 한 면모라 하겠다.
"어제를 알고 내일을 설계해야 합니다. 어제를 모르는 설계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입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려니 싶다.
올해 막 고희(古稀)에 드신 선생은 `국사편찬위원회 샤료조사위원` `양산향토사연구회 회원` `경남향토사 연구회 이사`로 젊은이 저리가라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