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무 발행
도서관에서 이 책을 뽑아 든 것은 책 제목을 보고 일탈의 사랑이 주는 묘한 흥미를 남의 일을 가장하여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을이라는 계절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몇 페이지 못가서 나는 흥미가 아닌 전율을 느껴야 했다.
35살의 나이에 그 곱절도 더 되는 무게와 깊이는 어디서 온 것이며, 자신의 이야기에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이 짧은 글에서도 나는 행여 감추고 싶은 내 속에 묻어날까 이리저리 고치고 있는데...
26세 때 31년 연상의 법관과 `죄가 아닌 사랑`을 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뒤로 하고라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소실의 딸로 태어나 1주일에 한번씩 아버지 오시는 날을 기다리던 `사랑으로 낳은 순결한 아이`가 생활기록부에서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어머니로 적혀있는 것을 보고 이해될 수 없었던 가족사에 눈뜨게 되는 대목에 이르러 나는 가슴이 뛰고 얼굴이 상기됨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아주 가까운 사람의 경우였던 것이다.
어차피 이런 류의 글은 작가의 말처럼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랄 수 있고 주관적이니 만큼 보편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쓰는 이 짧은 독후감도 물론 그러하다.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만이 토설해 낼 수 있는 죽음보다 더한 외로움과 처절함 그리고 어떤 절대자에로의 희구가 절절이 베어있는 글이다.
글 속의 `그대`가 어머니인지 남편인지 신인지 그도 저도 아닌 작가의 허무의 공간을 채워 줄 가상의 어떤 이인지는 시인들의 언어가 어렵기만 한 나로서는 추리가 잘 안되고, 어떤 글들은 공감할 수 없거나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도 주관적이고 그 글을 읽는 나도 주관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있어도 해서는 안 될 사랑은 없다. `죄가 아닌 사랑`에 가슴 앓고 있는 A 선배와 K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