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이 마을에 매화꽃이 만발했던가 짐작해 보지만, 마을 노인들도 마을 이름의 유래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니 그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매화꽃을 엎어놓은 형상의 가운데 마을"이라고 풀이해 주는 어느 젊은 새댁의 말이 그럴 듯 하다 싶다.
이 마을은 일찍이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집성촌이었다. 달성 서씨들이 이 마을에 들어 온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늘 마을 이장 민영언(62세)씨 댁에서 만난 서병율(65세)씨가 이 마을에 첫 발을 디딘 어른의 14대 후손이라니 달성 서문이 여기서 삶의 둥지를 튼 세월이 꽤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근년에 이르러 타성바지가 다소 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 마을 주민의 태반은 달성 서씨이거나 서씨의 외척들이다. 마을 민영언 이장도 증조모가 달성 서씨로 그 이후 6대째 내려오고 있는 서씨 가문의 외척이란다. 마을 위쪽에 달성 서씨 재실이 의젓하게 앉아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마을에서는 거랑(개울)물을 푸다가 먹었습니다. 상수도 같은 것은 필요도 없었지요. 그만큼 물이 맑고 맛도 좋았으니까."
그러던 것이 마을 주위를 `동부산 CC` `양산아도니스` `에이원 CC` 등 골프장들이 에워싸면서 사정이 생판 달라졌다. 이제 개울물은 먹기는커녕 농업용수로도 적합지 않을 정도라는 민 이장의 말이다.
"멀쩡하던 나락(벼)이 썩어들어 가서 일부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민 이장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1년에 두 차례 수질검사를 하고 매번 괜찮다는 판정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 촌사람들이야 그러면 그런 줄 알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있겠십니꺼? 지금도 비가 오거나 깊은 밤에는 새까만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기라" 곁에서 서병율 씨가 거든다.
"처음에는 관광위락단지를 맹근다 카는 소문이 떠 돌대. 그라고는 또 자연농원이니 민속촌이 들어설끼라 카고, 대학교를 짓는다는 말도 있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모르는 촌사람들 마음만 들뜨게 하더니만 알고보니 골프장이 들어오더구만"
"결국 우리 촌사람들이 꼬빡 속아 넘어간 건기라. 순진하게 사는 농민들 꼬셔서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을 다 팔게 한 거지"
민 이장과 서병율 씨가 차례로 말한다. 이곳 경관이 얼마나 절경이었으면 도회지의 부자 양반들이 다들 탐을 냈을까? 자그마한 마을에 골프장이 세 개나 되는 것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겠다.
처음에는 논 한 평당 5천원에 넘겨준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 만원 이만원 하다가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몇 십만원까지 받은 이들도 있다지만 결국은 손에 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대토(代土)도 못하고 땅마지기만 다 날려버린 셈이다.
"그 아름답던 경치도 다 사라지고 `곤지밭골` `도래웅덩이` `시리봉` `처자바우` `수리바우`라고 부르던 살가분(살가운) 옛 이름들도 인자 다 골프장에 묻혀버린기라." 민 이장의 푸념이다. 골프장 출입은 도시의 부자들이나 하는 것이니 주민들에게는 아무 돌아 온 것 없이 온통 잃은 것뿐이라는 말로 들린다.
"저 산만딩이(산등성이)에 올라가면 동해가 훤히 내다보이지. 우리 마을이 바로 부산과 울산, 양산의 경계지역인데다 올망졸망한 봉우리와 골짜기, 계곡들이 하도 절경이어서 차라리 관광위락단지로 잘 조성을 했더라면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도 득이 되고 양산시도 관광수입을 크게 올릴 수 있었을 낀데…" 서병율 씨의 말은 공연히 골프장 허가를 내주어 아름다운 자연도 잃고 주민들의 생활터전도 망쳐 놓았다는 말인 것 같다.
"골프장이 들어 선 이후로 마을 인심도 많이 변했지요. 이전에는 논, 밭을 사고팔아도 계약서도 없고 등기이전도 안 했어요. `인자 이기 내끼라` 하믄 그걸로 끝나는 기라. 서로 다 믿고 사는 사이인데 계약서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소. 그저 구두언약만 하믄 통하는 거지."
그런데 골프장이 생긴 이후로 작은 거래 하나에도 계약서를 챙기고 남의 말은 허투로 믿지 않으려는 풍조가 생겨 마을 인심이 옛날 같지 않고 사나워 졌다는 민 이장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농사짓기 좋은 들판에 아파트나 공장이 들어서는 것이 영 못마땅하단다.
"앞을 내대보고 살아야지. 언젠가는 또 배고플 날이 올지도 모르는 긴데… 나중에는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사지을 땅이 없어 우짤랑공"
그래, 앞을 내다보고 살아야지. 눈앞만 아니라 먼 앞을… 민 이장의 말을 오래오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