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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고향사람] "평범한 삶 속에 참 행복 있어"-양산인 이상..
사회

[고향사람] "평범한 삶 속에 참 행복 있어"-양산인 이상지 씨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1/29 00:00 수정 2003.11.29 00:00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어디든, 일찍이 양산과 인연을 맺어 양산 땅에 삶의 흔적을 남긴 이들의 가슴 속에 양산은 못내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이다. 물금읍 가촌리 출신 이상지(59세) 씨 또한 그렇다, 6.25전쟁 직후, 5.16전. 누구나 다 그랬듯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야불을 밝혀가며 공부했던 그의 유년시절, 그러나 그에게 있어 양산은 아리고 쓰린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봄에는 논두렁에 자운영 꽃이 피고 개구리 울던 일, 여름에는 수박, 참외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혼나던 일, 가을에는 논과 들에서 메뚜기잡기, 미꾸라지잡기를 하고 콩 구어 먹으면서 입가가 시커멓게 되던 일, 겨울에는 썰매타고 연날리기 하며 산에 가 나무를 하던 일 들이 떠오릅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뇌리와 가슴 속에 아롱져 있는 고향의 추억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윗대 선조들의 고향은 하북면이었으나 일제식민시대, 일본의 동경수의과전문대를 나온 부친(李信雨)이 수의관으로 몽골국의 몽골축산주식회사에 근무하시게 된 인연으로 그는 몽골의 당시 수도였던 장자커우(Zhangjiakouㆍ張家口)에서 3남 5녀 8남매의 차남으로 출생한다.
 
해방과 동시에 귀국하여 잠시 밀양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가을에 양산의 물금읍 가촌리로 피난을 옴으로써 비로소 어린 `상지`의 양산살이가 펼쳐진다. 그런 그는 일찍부터 앞날이 촉망되는 재기를 뽐낸다.
 
물금초등학교(29회) 수석졸업(양산교육장상 수상), 경남중 수석졸업, 부산고 수석졸업- 이렇듯 영특한 물금 촌아이 `이상지`는 마침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영재들이 걸어가는 당연한 코스를 비켜가지 않았던 그의 다음 코스는 당연히 사법시험 도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줄곧 상승가도만 달려 온 그는 여기서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만난다.

어찌된 셈인지 일곱 차례의 도전에 번번이 2차에서 평균점수 0.1 또는 0.2점 미달로 낙방의 쓴잔을 마시고 만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나이도 서른에 이르고 결혼 2년차의 아이 아빠가 되어 있었다. 이쯤에서 그는 앞으로만 내닫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르며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기약 없는 사법시험에만 매달리기에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현실이 너무 버거운 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한 생활인의 이력은 무역진흥공사를 시작으로 경남기업, 동국건설로 이어지고 형님이 세운 의료법인 안양병원의 기획실장 4년을 거쳐 개인사업 5년, 다시 안양병원으로 돌아와 기획관리실장과 법인사무처장으로 10년을 보낸다. 그러다 지난 4월에 부동산중개업소를 차렸다. 노후의 마지막 사업으로 생각하고 서울 역삼동 지하철 강남역 근처에 사무실을 연 것이다. 상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상지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1985년 제1회 때 이미 따 두었다.
 
"화려하고 꿈이 컸던 학창시절에 비하여 사회진출 후의 연속된 실패와 좌절, 사회적응의 어려움과 갈등, 그것을 극복해 온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세월은 빠르며 인생은 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긴 안목에서 보니 부와 권력과 명예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더군요."그래서 그는 권력과 명예가 없는 평범한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자식들 뒷바라지해 반듯하게 길러 놓은 것에서 소박한 행복을 맛본다.
 
양산시민신문을 통하여 고향소식을 접하는 것이 한갓 낙이라는 이상지 향우는 날로 변모하는 고향의 발전상이 반갑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연경관의 훼손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철학이념단체인 `한국휴머니스트회` 사회정화단체인 `성숙한 사회를 위한 모임` 서울법대 산악회 출신들의 모임인 `한오름회` `재경양산향우회` `재안양 영남향우회` `재안양 경주 이씨 화수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웃어른과 하나님을 공경하자 △겸손하고 부지런하자 △나누며 베풀며 이웃을 사랑하자 △이웃에 봉사하고 도움이 되자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부인 심재헌(56세) 씨와의 사이에 아들 우희(31세, 홍익대 졸, 작곡가), 딸 원희(29세, 한양대 간호과 졸, 한양대병원 장기이식센터 근무)를 두었고 아들 딸로부터 친손자(생후 6개월)와 외손자(생후 1년 9개월)를 보았다.
 
고향 친구로는 배재욱 변호사, 윤동민 변호사, 조승제 서울사대 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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