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진을 알고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 교장의 이름 석자는 매우 친숙하다.
"양산에는 뛰어난 문화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김덕명 선생 같은 전국적 지명도를 지니고 있는 분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많은 훌륭한 분들이 계신데…"
[문화초대석]의 인터뷰에 응해 주십사는 부탁에 자신은 그리 알릴만한 존재가 못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지만 사진작가협회 지부장이 공연한 허명일리 없고 그동안 각종 사진공모전의 수상경력이 만만찮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터에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는 일. 다짜고짜 사진입문 동기부터 묻는다.
"고등학교 때 집안에 사진업을 하는 사촌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님을 따라다니다가 사진의 신기함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치자면 사진작가 권기현의 사진역정도 어느새 40년에 이른다.
그렇게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그저 재미만 좇다가 나중에는 군대에 갈 때도 사진기를 들고 갈 만큼 사진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83년에 부산MBC 전국사진촬영대회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한국국제사진전 동상, 제물포사진대전 특선, 부산국제사진싸롱, 동아국제사진싸롱 등 국내 각종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100여 차례의 수상경력을 쌓고 현임 사협(寫協) 지부장 외에도 포토클럽 뷰(View) 회장 및 양산사진동우회 고문, C&E포토클럽 고문 등 사단(寫壇)의 여러 중책도 두루 맡았으니 사진작가로, 우리 지역의 문화ㆍ예술인으로 이름을 내세운다 하여 그리 겸양할 일이 아닐 듯 하다.
그렇다고 권기현 교장이 그의 예술혼을 애오라지 사진에만 불태웠던 것은 아니다.
대학(동아대)에서의 전공이 영문학이었음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시절 한때 그의 꿈은 문학이기도 했다. 부산대에 재직하던 요산 김정한 선생이 혹 동아대에 출강이라도 오면 그 시간에는 빠지지 않았고 나중에 자신의 결혼식 주례로 요산을 모실 만큼 선생을 흠모했다. 또한 당시 이름을 드날리던 시인들이 부산에 내려와 시론이라도 펼치면 한걸음에 달려가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다가 1969년에 소설 <불량도체>로 동아문학상에 당선, 마침내 소설가로 등단한다. 틈틈이 시를 쓰기도 하고, LP판 1,200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음악에도 남다른 식견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옛식으로 말하면 `팔방미인`이요, 요즈음의 시쳇말로는 `만능 엔터테이너`인 셈이다.
"이것저것 집적거리느라 어느 하나도 이렇다하게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어중이 입니다."
말은 그리하지만 그만큼 이녁의 삶은 다양하고 풍성했으리라. 그런데다 교직에서만 30성상을 몸 바쳤으니 그 또한 큰 보람일 테고… 대학 졸업 후 1974년 진주 동명고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해 83년에 보광고로 자리를 옮긴 후 평교사에서 교감을 거쳐 지난해에 교장을 맡기까지 학문과 예술을 두루 사랑하며 곱게 나이를 먹어가는 삶이 부럽기 그지없다.
"흔히 사진을 카메라가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진을 만드는 것은 인간입니다. 발로 뛰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가운데 비로소 한편의 사진이 창작됩니다. 다만 셔터만 눌러 찍어내는 사진과 머리와 가슴으로 빚어내는 사진은 천양지차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진은 빛과 시간이 만들어 주는 예술이지요."
조리개를 얼마나 열어 주느냐, 어느 각도에서 피사체를 잡느냐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하나의 사물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매력에 끌려 그는 그의 많은 관심사 중에서도 각별히 사진에 더 공력을 들인다.
도 지원과 시 지원을 다 합쳐도 채 오백만원이 안 되는 빈약한 예산으로 한 해에 한 차례 갖는 전국적 규모의 공모전과 협회 작품전, 작품집 발간 등 어림잡아도 기천만원의 예산집행을 해야 하는 협회운영도 쉽지 않고, 다른 도시에서 연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예산지원을 받는다는 소식에 가끔 마음이 우울해 지기도 하지만 "온몸으로 살자"는 평소의 인생관에 따라 날마다 힘이 솟구치는 그는 언젠가 태어날 자신의 `진짜 의미 있는 사진`, `한 시대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사진`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 쏟아야 할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
집안의 어른이신 장영달 교장께서 내려주었다는 아호가 연천(硯泉)이라니 "침묵 속에서도 아프고 가슴은 늘 활활 탄다"는 그는 천생 예술로 이녁의 삶을 불태워야 할까 보다.
크게 이룬 것이 없다고 애써 자신을 낮추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진작가 권기현 교장- 넘쳐나는 활력이 쉰아홉 나이를 무색케 한다. 부인 배정숙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영환, 영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