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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詩가 있는 마을] 詩로 그린 소리, 그림으로 그린 소리..
사회

[詩가 있는 마을] 詩로 그린 소리, 그림으로 그린 소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2/06 00:00 수정 2003.12.06 00:00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圖)는 선비가 조랑말을 타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는 그림이다.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길가 능수버들 가지 위에 노란 꾀꼬리 한 쌍이 앉아 있는 조그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슴푸레 보이는 산도, 길가의 계곡도, 계곡을 따라 펼쳐진 길도, 길가의 능수버들 가지도 흘러내리고 그 길을 거슬리지 않고 내려오던 조랑말 탄 선비도 물 흐르듯 흘러 내려오다가 문득 말고삐를 당겨 세우며 뒤돌아본다. 마부도 엉거주춤 멈추어 선다.
 
무엇이 선비로 하여금 그 모든 흐름을 거슬러 뒤돌아보게 했을까. 가슴속으로 노랗게 부서져 내리는 꾀꼬리 선명한 노랫소리다. 꾀꼬리 소리를 이 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까.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 울음 울어 / 때로 울음 울어 /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을 들이고 /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 지리산하(下) /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 한 울음을 토해 내면 /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 알았다 // 지리산중(中) / 저 연연(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 비로소 한 소리 없는 江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 섬진강 섬진강 / 그 힘센 물줄기가 / 하동 쪽 남해를 흘러들어 / 남해군도(南海群島)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 지리산하(下)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송수권 <지리산(智異山) 뻐꾹새>전문
 
지리산 첩첩 계곡 메아리로 넘어가고 넘어오는 여러 마리 뻐꾹새 울음소리가 실제는 한 마리 뻐꾹새가 한 울음 토해 내어 뒷산 봉우리가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넘긴 소리였다는 것을 석 석 삼년(27년, 한 생애)을 다 보내고서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뻐꾹새 울음소리는 시인의 울음소리다. 시인의 울음소리이니 시다.
 
그 뻐꾹새 울음소리는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고 산봉우리들을 울려서 섬진강으로 흐른다. 섬진강은 하동 남해로 흘러들어 남해군도 여러 작은 섬들을 밀어 올린다. 이렇게 웅장한 뻐꾹새 울음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시를 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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