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사실을 극구 숨겨
스님의 평소 성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 중 대표적인 것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에 1억5천만원을 보시한 것. 당시 아무도 모르게 가명으로 나눔의 집 통장에 거액을 입금했는데 상좌들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언론에 알렸다가 오히려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는 일화는 스님의 기품을 엿보게 하는 대목.
○75세의 노구로 운전면허증 따
월하스님은 75세의 노구로 운전면허증을 직접 따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에 순례를 가 그곳 노인들이 손수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귀국한 월하스님은 귀국 직후 바로 운전학원에 등록, 첫 시험에 운전면허증을 따고는 가까운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손수 운전을 하고 다녔다.
○차별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 보여
스님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한번은 매우 추운 겨울날. 허름한 차림의 사람이 찾아오자 스님은 기꺼이 맞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문 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여행사 사장이 이유를 묻자 "신도들이 있는 곳이면 내가 찾아가야하는데, 직접 산골까지 찾아와주니 어찌 배웅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 스님은 이처럼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이건, 거지 행색의 차림이건 똑같은 모습으로 대하고, 항상 문 앞까지 배웅했다. 차별하지 않는 수행자의 참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언제나 솔선수범 했던 스님
스님은 '언제라도 할 일이라면 지금 하라' '지금 할 일이면 더 잘하라' '누가 할 일이면 내가 하라'는 신념으로 항상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출타 했다가 돌아오면 언제든지 풀을 메는 도구를 가지고 도량 구석구석을 손수 풀을 멨다. 봄이면 통도사 논에 가 손수 모심기를 하기도 했다고.
○사중의 물품을 몸처럼 아꼈던 스님
어느 날 소임자가 사중의 어떤 물건을 내어갈 일이 있었는데 스님은 "절집에는 물건이 들어와도 나가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시주물을 독 묻은 화살촉처럼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한다.
○권력자를 꾸짖었던 스님
스님이 종회의원을 하던 당시 전국 신도회장이던 이후락 씨가 "신도회장도 종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자 "종회에 들어오려면 머리 깎고 들어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아직도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위해 전 사재를 털어
통도사엔 일찍이 3만여 점의 국보급 보물이 있어 항상 보관에 신경을 쓰곤 했다. 그래서 월하스님의 원력으로 성보박물관 공사를 시작했는데, 평생 법문비와 거마비로 모았던 33억여 원을 아낌없이 박물관 짓는데 내 놓았다. 한 푼 두 푼 저금하던 스님이 은행에 가 그 돈을 찾아가자 놀란 직원이 "왜 저희 은행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월하스님이 "쓸 때가 있어 그래요" 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직원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