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북쪽 금정산맥(金井山脈)의 주봉에서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화강암 절벽 위에 새겨진, 높이 12m, 폭 2.5m의 거대한 마애불이다.
머리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둥글게 솟아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네모진 형태이고 활 모양의 눈썹과 살짝 감은 눈, 망울이 큰 코등이 토속적인 인상을 준다. 어깨가 벌어져서 신체가 건장해 보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얕게 새겨져 있다.
암벽 주변에 축대와 토기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예전에 근처에 사찰이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모습이 토속적이고 지방색이 짙으며, 얕은 선각으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법기리도요지[法基里陶窯地]
사적 100호. 오래 전부터 근처에 있는 창기마을의 이름을 붙인 '창기사발'을 만들던 가마터로 알려진 곳이며, 조선 중기인 16~17세기경 지방에서 사용하던 백자를 만들던 곳이다. 마을 뒷산의 기슭에서 산 윗부분까지에 걸쳐 가마터가 여러 곳이 남아있는데, 사람들의 주거공간과 무덤들이 들어서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가산리도요지[架山里陶窯地]
도기념물 196호. 조선시대의 관요(官窯:고려?조선 시대에, 관아에서 운영하던 사기 가마)로 추정되며 1970년대에도 옹기를 굽는 현장이 남아 있었다. 마을 지명 또한 아직도 옹기골로 불려지고 있다.
◁호포성지(狐浦城址)
시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호포성지라 전해오며 철로에 접한 소구릉상에 있는 중형의 석축성이었으나 일제 때 전부 파괴 멸실되었다.
◁이수생 묘(李秀生 墓)
조선 순조 10년(1810년) 임진왜란 때 경주, 언양 경계에서 적병과 접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다음해 영천에서 적을 쫓다가 팔공산에 이르러 크게 이겼으며 화왕산에서는 곽재우(郭再祐) 막하에서 적군을 대파하였다. 후에 조정에서는 종삼품훈련원첨정(從三品訓練院僉正)을 제수하였다.
◁은동굴(銀銅窟)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에 은, 동을 캐낸 곳으로 굴의 내부에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와 샘이 있어 임진왜란 때에는 산 아래 동네 6성(李, 許, 鄭, 裵, 孫, 余氏) 가족들의 피난처였다고 한다. <사진있음, 동면지 p520>
◁금호사(琴湖祠)
조선 순조 10년(1810년)에 임진왜란 공신이었던 이계생(李季生)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연안 이씨 문중에서 사당을 지었는데 훼손되고 가묘(家廟)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