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협회 양산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는 무용가 이지은 씨를 만나봤다.
"아마도 우리 집안은 '끼'있는 집안이었던가 봐요.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도 '끼'가 많으신 분이었거든요. 마을에서 잔치라도 벌어지면 아버지가 장구를 치시며 흥을 돋우셨는데 그러면 마을 어른들이 장구의 줄에 주렁주렁 돈을 매다는 것을 보고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의 신명을 보면서 자란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물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물금초)와 중학교(동아 제2중ㆍ물금동아중 전신), 고등학교(양산여종ㆍ양산여고 전신)를 줄곧 양산에서 다니며 양산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자영 풍광 속에서 무용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가꾸어 나간다.
당시만 해도 양산에는 이렇다할만한 무용학원이 없었던 시절. 어린 '지은'은 멀리 부산까지 무용수업을 다니게 된다.
부산역 부근에 있던 학원까지 가자면 물금역에서 부산진역이 종착지인 경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진역에 내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부산역까지 가야하는 길고도 먼 길이었다.
어린 소녀에게는 그 길을 오가는 것이 여간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니었으련만 그래도 꿈 많은 소녀 '지은'에게는 부산으로 무용수업을 받으러 다니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춤이 그저 좋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당시 그녀의 소꿉동무들 중에는 무용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떠나야 하는 그녀로서는 학교친구든 동네친구든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없었고 혼자 무용을 한다고 나다니는 그녀와 놀아주려고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외롭고 쓸쓸했던 소녀 이지은-
그랬기에 그녀는 더욱 더 무용에 땀을 쏟았는지 모를 일이다. 외로웠던 만큼 어린 가슴은 무용가를 향한 열정으로 마냥 불타올랐으리라…
"무용이 친구였지요. 틈나는 대로 공연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춤판이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무용에만 몰두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그때까지 배웠던 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듬게 된다. 91년에 부산여전(부산여대 전신)을 졸업하고 다시 진주에 있는 국립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녀의 춤 인생도 한층 완숙해 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태어난 땅인 양산을 떠나지 않고 양산 향토문화의 텃밭을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 때로는 고향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
"돌아보면 모두가 아는 분들입니다. 자연히 주위의 눈치를 안 살필 수가 없지요. 뭔가 좀 나서보고 싶어도 공연히 주변에서 뭐라고 할까 싶어 두렵고…"
그랬으리라. 누구네 집 딸이라는 것도 부담이 되었을 테고, 다 아는 안면에 자칫 '난체'하는 것으로 비칠까 염려되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공연도 고향무대를 놔두고 짐짓 부산, 울산, 진주 등지에서 펼치게 된다. 그래서 무용가 이지은의 이름 석자는 안(양산)에서 보다는 바깥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바깥으로만 나돌 수는 없는 일, 그녀가 정작 한 사람의 무용가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곳은 고향이다.
"내년인 2004년은 제가 안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해가 될 겁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좀 당당해 지려고 합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나이도 어느새 삼십 중반고개를 넘어 서른여섯. 어릴 때부터 익힌 그녀의 춤 인생도 하마 삼십년에 다다랐으니 이제 무엇을 한들 누가 탓하랴.
그런데다 무용협회 양산지부의 지도자 자리도 맡았으니 지역의 춤꾼들을 한데 아우르고 엮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협회에 등록된 회원이 열다섯 분 정도 됩니다. 내년 계획으로 한 차례의 정기공연과 3개 분야를 한 무대에서 펼치는 페스티벌 등을 우선 구상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회원들과 함께 의논 중입니다. 2004년의 컨셉을 '찾아가는 무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산의 춤을 부산, 울산 등의 인근지역에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향토의 춤꾼, 이지은에게 춤은 무엇일까?
"우리네 삶 자체가 움직입니다. 움직임이 다듬어지면 그것이 곧 춤이 되고 춤이 승화되면 예술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네 삶의 모든 움직임이 춤의 바탕이라는 말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밥을 지으면서도 몸을 흔든단다. 다시 말해 춤을 추면서 밥을 짓는다는 말이겠다. 춤을 출수록 자꾸만 춤이 더 좋아진다는 그녀는 천생 춤꾼의 팔자를 타고났나 보다. 아래로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다는데 아홉 살 바기 아들도 춤을 좋아하여 춤을 배우고 있다니 일찍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끼'의 대물림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없다.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의 남부시장 들머리에 '이지은 무용학원'을 열어 놓고 있는 향토 무용가 이지은- 오랫동안 무르익어 온 그녀의 2004년 춤 세계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