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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우리마을] 삼성동 - 문화유적..
사회

[우리마을] 삼성동 - 문화유적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3/12/20 00:00 수정 2003.12.20 00:00

◇ 북정리고분군 [北亭里古墳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3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산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면적은 25,994㎡로 오봉산 중심이 되는 산등성이 일대에 있는 무덤들이다. 대형 무덤은 산의 윗부분에 퍼져 있고, 소형 무덤은 비탈진 곳이나 산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들 가운데 부부총(夫婦塚)과 금조총(金鳥塚)은 1920년에 조사되었고, 1990년에 내부구조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무덤들은 모두 관을 보관하는 돌방(석실)의 앞면이 트인 앞트기식굴방무덤인데, 부부총은 산 위쪽에 자리 잡은 대형무덤으로 돌방 내부의 벽면과 천장을 흰색으로 칠하여 장식하였다. 반면 금조총은 산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소형 무덤인데, 무덤들이 자리 잡은 위치와 형태가 다른 것은 무덤 주인들의 신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제장식품을 비롯한 화려한 유물은 경주지방의 대형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과 비슷하다. 부부총의 경우는 추가장으로 남편이 5세기 중반 이후에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로 볼 때, 무덤의 주인은 신라의 중앙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그 친족에 해당하는 인물로 추측된다.

◇ 신기리고분군[新基里古墳群]
사적 제94호. 고분 50여기가 삼성동 남쪽 약 10만㎡의 산기슭 경사면에 있으며, 봉토(封土)가 거의 깎여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고분들은 도굴, 파괴되었다.
고분의 구조 및 시기는 파괴된 상태의 모습으로 보아 고신라(古新羅)시대에 가야지역에 흔히 보이는 앞트기식(橫口式) 돌덧널무덤 또는 돌방무덤(石室墓)들로 보인다. 이러한 무덤은 인근의 중앙동에 있는 고분들과 같은 형식의 무덤이다.
삼성동ㆍ중앙동은 남해에서 경주 등지로 이르는 수륙교통의 요지로서 양산 신기리 산성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왜인(倭人)을 막는 군사적 요충으로서 기능했다고 보인다. 따라서 신기리고분군은 신기리산성과 관련하여 이 일대에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지배자들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동에 있는 산성 및 고분군 등도 같은 시기에 같은 기능을 하던 유적들로 보인다.

◇ 신기리산성 [新基里山城]
사적 제97호. 양산시 중심부에서 북동쪽 1km의 거리에 있는 산성봉(山城峰:332m)의 정상부에 축성된 산성으로, 이 산을 성황산[城隍山] 또는 서낭산이라고도 부르므로 성황산성(城隍山城) 또는 서낭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둘레는 약 2.6km로 성벽은 대체로 네모난 깬돌(割石)을 이용해 1m의 높이로 쌓았다.
대부분 무너졌으나 둘레 2,600m, 높이 1m 정도가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양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과 성 안에서 신라 토기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성의 남쪽에는 이 산성과 규모가 비슷한 북부동산성이 있어 쌍성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양산이 신라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게 한다.

◇ 신기리지석묘 [新基里支石墓]
1990년 12월 20일 경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산시에서 소유ㆍ관리하고 있다. 1기로 양산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이 지역 일대에 여러 고인돌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개발로 인하여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묘의 형태는 긴 사각형의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支石)을 갖춘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40㎝, 폭 155㎝, 높이 100∼130㎝이다.
편마암류의 단단한 돌로 되어 있으며 윗면은 편평하며 알구멍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은 둥근 냇돌로 덮개돌 아래에 고여져 있다. 하부 구조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지 않으나 일반적인 고인돌과 같이 지하무덤방이 설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호계리마애불 [虎溪里磨崖佛]
1979년 5월 2일 경남도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호계동의 큰 바위 얼굴로 불려지고 있는 이 마애불은 호계리 월전마을 뒤 산중턱에 있는 큰 바위의 남쪽면에 새긴 것으로 불상 높이 220㎝, 대좌 높이 320㎝이다. 바위 아래에는 사람 10명 정도가 기거할 만한 동굴이 있는데, 온돌을 구축한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지역에서는 원효가 젊었을 때 수도하던 반고굴(磻高窟)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마애불로는 드물게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묶음이 있다. 몸에 비해 큰 얼굴, 길게 감은 눈, 큰 코, 다문 입 등은 투박한 인상을 준다. 신체는 풍화가 심해 뚜렷하지 않은데, 양 어깨에 걸친 옷이 두툼하게 선각되었고, 손·발 역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대좌(臺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평면형을 선으로 새겼고, 광배(光背)는 타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희미하게 선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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