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내가 산타할아버지 노릇을 한 지도 어느새 스무 해가 훌쩍 넘었나보다.
세월이 흐른 만큼 가지가지 아름답고 소중한 사연들이 소복하게 쌓였다.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
한 15, 6년쯤 되었을까? 그 해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크게 소문내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어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약속한 24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불교의 사찰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사찰의 주지이자 유치원 원장인 스님이 산타클로스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불교 유치원에서도…."
내가 뒷말을 채 맺기도 전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고운 꿈을 심어주는 일인데 기독교면 어떻고 또 불교면 어떻습니까?"
다시 쳐다 본 스님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자투리 시간에 스님과 몇 마디 따뜻한 얘기가 오갔다.
“나의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지요. 좋은 것은 남의 것이라도 존중해야지요.”
그래서 그 날 밤 그곳에서의 두 서너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세상살이가 이만큼이라도 견딜만한 것은 넉넉한 마음을 지닌 좋은 이웃들 덕분이려니 하는 좋은 생각 하나를 얻은 그 날, 그 밤은 정말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전영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