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 / 오전 수업을 마친 뒤 / 육성회 회식 자리를 빠져나와 / 아이들과 복성 강가로 갔다 / 꼭 큰놈 하나 잡아 몸보신 시켜주겠다며 / 황소 별명을 가진 일우가 초망을 던져보지만 / 번번이 피래미만 올라온다 / 벤댕이 속 같은 니가 던지니 / 피래미만 올라오지 / 목소리 큰 상아가 핀잔을 준다 / 기죽은 녀석은 이번에야말로 하며 던지다가 / 그물과 함께 물에 빠지고 / 낮달도 함께 물에 빠지고 / 매운탕 대신 강둑에 자란 늦은 쑥을 캐어 / 여학생들과 함께 지짐을 부쳐 지친 배를 채워본다 / 남학생들은 개헤엄이지만 익숙한 솜씨로 / 물장구를 쳐대고 / 물보라 사이 / 오월의 그림자가 강 빛에 젖어든다
김복진 <스승의 날에>전문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중학교. 스승의 날이라고 육성회에서 모처럼 마련한 회식자리엔 마을 이장님도, 농협 조합장님도 양복 입고 머리 기름도 바르고 나왔을 텐데 회식자리 빠져 나올 때 아마 뒤통수가 제법 당겼을 것이다. 열 댓 명밖에 안 되는 교직원이라 한 명이라도 빠지면 곧바로 눈에 띄는 법인데 무슨 핑계 대고 나왔을까.
별명이 황소인 체구 좋은 일우 녀석이 좋아하는 선생님과 여학생 앞에서 솜씨를 보이겠다며 그물을 던지다가 그물과 함께 물에 빠지고 낮달도 함께 물에 빠진다. 배꼽잡고 웃는 아이들과 풍덩 빠진 몸으로 멋쩍게 일어나 머리 긁적이는 녀석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왕 젖은 몸 녀석은 개헤엄이지만 여학생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몸보신은 벌써 물 건너갔다. 이미 웃자라 제 맛 나지 않는 늦은 쑥을 캐어 지짐을 부쳐 지친 배를 아이들과 같이 채운다.
아이들과 어울려 천진스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활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시다. 훈훈하기가 어느 자리에 가져다 두어도 잘 어울리면서 빠지지 않을 한 폭의 민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