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할인매장 진열대에서 번데기 통조림통을 다섯 개나 고른다.
"당신,참 이상해. 먹는 것 그렇게 가리면서 세상에 번데기를 이렇게 좋아하는 것 보면."
중학교 때부터 한 10년 남짓 집에서 누에를 쳤었다. 그 때문에 언젠가 아내가 자꾸 권해 번데기를 한 번 씹어보기는 했지만 꼬물거리는 누에가 떠올라 결국 삼키지 못했었다.
환한 아침, 왕거미가 허공을 타고 내린다
그 줄이 눈부시다
어릴 때 오디를 씹다가 생각난 건데
나도 누에처럼 파란 그물을 줄줄 뽑아내고 싶었다
추운 세상에 따뜻한 옷 한 벌 지어주고 싶었다
시를 쓰는 일도 그런 일일까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네 그림자가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네가 떠났고, 그럼 나는 뭐냐? 고개를 드니
건너편 옥상에 빨래들이 파닥이며 희다
그 줄이 눈부시다
담벼락을 둘러 죄다 마른 담쟁이덩쿨
봄 되면 초록초록 새잎을 매달리라
그 희망이 눈부시다
이 저녁 신문에 쓸쓸한 기사가 났다
죽으려고 줄을 매다는 것은 사람뿐이다
- 박윤규 <그 줄이 눈부시다> -
환한 아침과 허공을 타고 내려오는 왕거미의 눈부신 줄이 잘 어울린다. 늦은 저녁이라거나 했으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거미줄을 보며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이 떠올라,누에 ⇒ 뽕나무 ⇒ 오디를 따먹으며 했던 추운 세상에 따뜻한 옷 한 벌 지어주고 싶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시를 쓰는 일도 그런 일일까’라고 하는 것은 시인이 자신의 시가 세상에 그런 따뜻한 옷 한 벌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소망을 한다는 말이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 떠난 네 그림자를 만난다. 골목과 떠난 그림자가 어울린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옮겨가자마자 옥상의 눈부신 빨랫줄로 밝아지고 다시 마른 담쟁이덩굴로 갔다가 초록초록 새잎을 달 봄으로 희망이 눈부시다. (그러고 보면 처음의 환한 아침은 늦가을 아침이리라.) 그 희망에서 죽으려고 줄을 매단 신문기사로 시는 끝난다.
환한 아침의 눈부신 줄에서 시작한 시가 죽기 위해 목을 매다는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 동안의 희망 ⇒ 절망 ⇒ 희망의 반복으로 보아 또 다른 따뜻한 희망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이 시의 리듬은 이런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 있다.) 밝음으로 시작해서 어둠으로 닫은 것 같지만 그 어둠은 더 밝은 세상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목을 매달려고 줄을 매는 사람이 이 시를 읽고 마른 담쟁이덩굴이 꿈꾸는 초록초록의 봄을 떠올리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이다.
문학철 / 시인ㆍ보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