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면 미루나무보다 키 큰 나무가 많은데도 키 큰 나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미루나무다. 땔나무로 다 베어낸 붉은 산, 민둥산만 가득했던 어릴 적 고향산천에 다른 키 큰 나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지만 신작로를 따라 두 줄로 길게 들판을 가로질러 늘어선 미루나무를 늘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이면 그렇게 두 줄로 늘어선 미루나무는 옷 다 벗고 머리끝만 노랗게 물들이고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 노랗게 반짝이는 미루나무 머리끝 단풍 사이로 해지는 것을 늘 볼 수 있었다. 거기 올라가서 먹다가 뱉어낸 붉은 사탕보다 영롱한 해를 만져보고 싶었다.
저물녘 해가 미루나무에 걸터앉아 햇살을 헹굽니다
어릴 적 물고기 빠져나간 손가락 사이로 노을,
노을이 올올이 풀려서 떠내려갑니다
누런 광목천 하나로 사철을 건너신 어머니
어머니께 꼭 끊어드리고 싶었던
비단폭 같은 냇물을 움켜쥡니다
이제는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텅 빈 굴뚝을
우렁우렁 넘어오는 부엉이 울음이 맵습니다
원무현 <저녁 무렵>
저물녘 해가 미루나무에 걸터앉아 저녁 햇살을 헹구어 내어 맑은 노을 진 하늘이 담담한 분홍빛으로 투명하다. 시인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아예 해가 되어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옮겨 앉는다. 맑고 투명한 분홍빛 아름다운 노을이 강물처럼 흘러 어릴 적 개울에서 잡았던 물고기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던 느낌이 살아난다. 그 맑은 물에 해가 되어 누런 광목천 하나로 사철을 건너신 어머니께 꼭 끊어드리고 싶었던 노을빛 비단폭을 헹구어 본다.
해는 이미 지고 지는 해와 함께 나는 미루나무에서 내려와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는 광목천으로 사철을 건너시던 어머니도 이미 가고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녁 풍경과 어우러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그리되 자신의 감정은 감추고 있다. 우렁우렁 울음으로 목을 타고 넘어오는 한을 꿀꺽 삼키고 괜시리 올라오지도 않는 굴뚝 연기에 눈이 맵다고 시침을 떼고 허공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눈자위 붉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문학철 보광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