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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고향 사람] 물금 출신의 환경공직자 '석금수'..
사회

[고향 사람] 물금 출신의 환경공직자 '석금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1/17 00:00 수정 2004.01.17 00:00
공직을 떠나도 쾌적한 환경을 가꾸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싶어

 전주지방환경청장 석금수(石錦秀)-

 물금읍 물금리 남부마을이 석 청장이 태어난 곳이다.

 1947년,그때만 해도 양산시가 양산군이던 시절이어서 지금의 물금읍은 물금면이었다.
 거북산 자락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남부마을은 북으로는 중부마을, 남으로는 증산마을과 이웃해 있다. 마을 앞으로는 경부선 철도가 뻗어 있고 기름진 강변 갯밭을 끼고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그곳이 어린 '석금수'가 자란 곳이다.

 "뒷동산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낙동강을 라인강으로 착각, '로렐라이 언덕'을 노래하면서 감상에 젖곤 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더 없이 맑고 깨끗했던 강물, 강변의 반짝이는 모래밭, 가을이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녘.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마을이었습니다. 거기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 욕심 없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야말로 순수 그대로였다고나 할까…"

 낙동강과 라인강, 동방의 작은 나라 경상도 양산 고을에 있는 한 마을의 뒷동산과 독일 라인강가의 로렐라이 언덕- 그 대비가 자못 재미있다. 시골마을의 어린 아이가 어찌 그리 먼 세계를 내다보았을까 싶어 그저 놀랍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일찍부터 고향을 떠난다.
 초등학교를 경남 의령에서 다니고 중3때, 지금은 물금동아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동아 제2중학교'로 전학와서 잠시 머물다가 고등학교(동성고) 때 다시 부산으로 떠난다.

 그래도 양산에서 부산은 지척. 마음만 먹으면 한 달음에 달려올 수 있는 곳이니 소년 '금수'로서는 몸이든 마음이든 양산을 아주 떠나지는 않았을 터.

 그러다 그가 정작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1975년 2월에 고려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인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에 들어간 것이 76년 10월. 보사부에서 94년 4월까지 근무하고 94년 5월부터 환경부로 옮겨 지난해 10월까지 몸담았다가 곧 바로 현 근무처인 전주지방환경청 청장의 자리에 앉았다.

 전라북도 전 지역의 환경을 관리하는 환경부 1차 소속기관인 지방환경청의 수장이 된 것이다. 환경부에서는 화학물질과장과 생활폐기물과장,대기관리과장을 역임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으로 쉽게 사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것 같아요. 넓은 안목으로 처절하게 고뇌하는 젊은이의 상이 아쉽습니다. 처절한 고민만이 대작을 낳게 되는 것이지요."

 처절한 고뇌- 그렇구나. 작은 시골마을 출신인 그가 오늘 이처럼 번듯하게 삶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도 다 이녁의 삶에 부여한 처절한 고뇌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석 청장은 자기관리와 자신의 능력을 계발 하는 일에도 철저했다. 공직생활 중에도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90년) 국제기구인 IFCS(Intergovernmental Forum On Chemical Safety)부회장 및 IFCS 아시아 지역대표를 약 2년간 역임했다.

 화학물질의 안전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인 IFCS는 92년 브라질의 리우환경회의에서 채택된 'Agenda21' 제19장(유해 화학물질의 건전한 관리)의 권고에 따라 UNEP, ILO 및 WHO가 공동으로 94년 4월에 설치한 조직으로 화학물질안전에 관한 UN이라고 불릴만큼 권위 있는 국제기구다.
 "물금읍 신기리의 박종원과 가촌리의 박세관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고향의 친구들 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가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대포잔이라도 기울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가 없어 아쉽습니다."

 이렇듯 고향과 고향친구들에 대한 정이 애틋한 그는 고향의 발전상에 대해서 한마디 뼈있는 충고를 한다.
 "이제 우리 경제 수준도 끼니를 해결하는 수준은 넘어섰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는 진정한 행복, 삶의 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도시발전을 생각해야 됩니다. 도시화도 좋고 대학유치도 좋지만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고향의 아름다운 산하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가꾸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발간되는 양산시민신문에도 애정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일반 서민들이 쉽게 그리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신문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향의 토막소식, 이웃집 순이네의 가정이야기, 고향의 역사 등등… 아무튼 양산시민신문의 중단 없는 전진을 기원합니다."

 자신의 젊음과 인생의 절반을 투자해 온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공직을 떠나서도 우리나라의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싶다는 포부를 지닌 석 청장은 부인 황연화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한'과 딸 '보라' 남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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