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서양의 늙은 마녀로도 보이고 젊고 아리따운 여인으로도 보이는 그림을 복사해서 작은 녀석과 큰 녀석에게 보였더니 작은 녀석이 그림 속 여자가 예쁘다고 한다. 그러자 큰놈이 작은놈더러 '눈이 삐었구나. 그 여자가 예쁘면 세상에 안 예쁜 여자 정말 한 명도 없겠다.'고 한다. 둘이 옥신각신하더니 큰놈이 먼저 '아하, 이렇게도 보이는구나' 했다.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자연을 탐색하여 감춰져 있던 닮은 점을 하나로 묶어 융합시키는 데서 오는 폭발을 과학 발견의 감동이라 한다면 시를 쓰고 읽는 기쁨은 저렇게 '아하' 하는 도저히 연결되지 않을 것 같던 것을 연결하는 데서 터져 나오는 발견의 기쁨이다.
속이 싱싱한 불꽃이라야 제 맛이 난다
아내 늦은 저녁 상차림을 도와
옅은 갈색 마른 껍질이
두세 겹 빈틈없이 둘러싼
잘 마른 양파 얇은 겉껍질을 벗긴다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향으로
연두빛이 도는 납작스레 동그란 양파가
환한 빛 속살을 드러낸다
버섯 전골에 맞게 세로 썰기로 자르고 남은 /
양파 반쪽
속이 싱싱한 타오르는 불꽃이다
큰 놈 낳던 날 오신 어머니
"너도 이젠 속이 생겨 겉껍질이 됐구나"
전골 냄비 하나 가운데 두고
신김치 한 접시, 밥 한 공기씩
큰놈, 작은놈, 집사람과 내가 둘앉은 식탁
향그런 불꽃으로 환한 우리 식탁 주위엔
이제는 겉껍질로 둘러싸는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아! 어머니
졸시 「버섯 전골을 먹으며」전문
아내 저녁 상차림을 도와 양파껍질을 까다가 큰놈 낳던 날 오신 어머니가 “너도 이젠 속이 생겨 겉껍질이 됐구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외할머니 속이 어머니였다면 어머니 속이 나였고 내 속이 큰놈이다. 겉껍질 속에 속껍질이 있고 속껍질 속에 더 깊은 속껍질이 있고 그 속에 또 속을 만들어 내는 속이 있다. 생명의 본질과 양파의 모양은 서로 범주가 다른 것인데 그 서로 다른 범주의 다른 것들이 지닌 감춰진 닮은 점을 어머니께서 하나로 묶어 낸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한 편의 시가 된다.)
거기다 나는 세로 썰기 해서 남은 양파 반쪽에서 불의 모습을 묶어내고 다시 생명과 하나로 묶었다. 이미 죽어서 말라버린 양파 겉껍질이 연두색이 도는 살아 있는 속껍질을 감싸서 보호하듯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조상까지도 우리의 삶을 감싸 지켜주고 있는 모습이 겹겹의 광배와 같은 모습으로 환하게 드러나 보였다.
지금의 내 한 생명 뒤에는 무수한 조상의 한없는 사랑이 수십 겹, 수백 겹의 겉껍질로서 둘러싸고 있으면서 계속 생명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창조는 감춰진 닮은 점을 찾아내어 융합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