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7시, 신도시에 있는 닭요리 전문점 '닭익는 마을'에 갑자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양산사랑참여시민모임 '양동이'의 회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들의 초대를 받고 참여한 친구들. 모두 5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활짝 밝은 얼굴로 저마다 식탁을 둘러싸고 여기 저기 자리를 잡았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어린이들까지…
사람들이 얼추 모였다 싶을 무렵, 아마도 그 자리의 최연장자인 듯한 노신사 한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양산에 조류독감이 몰아치고 난 뒤로 양계농장의 농민들이나 닭, 오리 영업을 하는 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새삼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자신을 '좋은이웃'이라는 아이디로 소개한 그는 "오늘 우리가 소비하는 닭고기가 시름에 젖어있는 분들에게 무슨 그리 큰 도움이 될까만, 이렇게라도 이웃의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며 "이번 캠페인이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은 물론 시민사회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쳐 피해 농가나 관련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닭고기,오리고기의 소비가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서 '너른바위'라는 아이디의 40대 남자가 "원래 닭고기 보다는 생선회나 육고기를 좋아해 닭고기는 잘 먹지 않았지만 고통 받고 있는 양계관련 업종의 이웃들을 외면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며 "아무쪼록 맛있게 많이들 들고 가자"고 했다.
'돌쇠'라는 분은 "부친이 농사를 짓고 계셔서 조류독감 피해 농민들의 아픔이 남의 일이 아닌 듯 해 참석하게 되었다"며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이 지금은 어려운 양계농가와 관련업종을 돕는 게 양산을 진정 사랑하는 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양산초이'라는 분은 "살처분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학생들이 몹시 시무룩해 있는 것을 보고 같이 마음이 언짢았다"며 "행여 그들이 닭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까 싶어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전교조 소속 고등학교 교사인 그는 "앞으로 닭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아질 때까지 적극적으로 닭고기 전도사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는 이 업소 업주 오용식(46)씨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 전업이나 폐업도 심각하게 고려해 봤다"며 "얼마 전 원주의 한 통닭집 주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오늘 이처럼 여러분께서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시니 그나마 힘을 얻는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업주 오씨의 말에 따르면 평소 하루 매상이 8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는 되었는데 이번 파동 이후 거의 개문폐업상태라고 했다. "어제 매상이 얼마였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3만 6천원이었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마침 이 자리에 함께한 공무원노조 양산시지회장 김경훈씨는 "내가 바로 수많은 조류들을 살생한 장본인"이라며 웃음으로 애써 무거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고통 받는 분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참석했다"며 "다 같이 노력하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조류독감 파동이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했다.
이렇듯 한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가운데 겨울밤은 소리 없이 사위어 가고 있었다.
기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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