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한라산 산행기] 설원을 걷다..
사회

[한라산 산행기] 설원을 걷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2/21 00:00 수정 2004.02.21 00:00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뒤로 하고 눈꽃을 머리에 인 한라산은 겨울등반의 백미다.
 파란 바다와 하얀 한라산의 보색 대비는 언제 보아도 황홀하다.

 원효산악회 회원들과 새벽부터 서둘러 도착한 성판악 휴게소는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는 한라산 등산로 중의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관음사코스가 있기는 하지만 무척 가파르고 미끄러운 돌계단이 많아 초보자나 여성 동반 등산이라면 아무래도 성판악이 낫다고 한다.

 성판악에서 곧바로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온통 눈 천지다. 폭설로 인해 눈으로 다 묻혀버린 한라산은 하얀 평원으로 변해 있었다.
 등산로는 지상에서 2m 높이의 공중 길이다.
 등산로에 쌓인 눈은 2m정도니 등산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눈에 파묻히고 만다.
 왼쪽의 성널오름(1205m의 분화구가 있는 작은 화산)을 끼고 사라오름까지 이어진 등산로는 너무 평온하다.
 10m이상 되는 낙엽수림사이로 구상나무가 푸른빛을 띠우며 설원의 단조로움을 풀어 준다.구상나무와 고사목 가지위의 화려한 설화는 여린 햇살을 받고 더욱 빛을 발한다.

 무인 대피소인 사라악 대피소를 지나면 붉은오름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가 계속되는데 뒤돌아 보면 성산 일출봉을 비롯하여 제주 동부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 날씨는 너무 좋다. 눈보라로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 한라산 등반이지만 운 좋게도 우리 산악회 회원들은 수 많은 오름의 장관을 목격했고 푸른 바다와 오름들의 조화를 통해서 설원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해발 1500m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하니 제법 등산객들이 붐빈다.

 진달래밭 대피소부터는 경사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조금씩 힘들어 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둘지 않는다. 눈 내린 겨울 산은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 외에는 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는가.

 오직 한가지 순백색의 눈꽃들로 빚어내는 진달래밭 대피소 주변의 설경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축복이다.

 이제 정상까지는 마지막 인내가 필요하다. 조금씩 오를수록 시야기 넓어지고 탐라의 전경들이 꿈처럼 펼쳐진다. 오르다 뒤돌아보기를 수십 번 드디어 백록담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보라에 얼굴 감각이 무뎌지고, 머리카락과 눈썹에 입김이 맺혀 얼어붙기까지 했지만 한라산은 꿈속처럼 환영을 해준다. 건조기라 물 한 방울 없는 백록담이지만 주변을 성처럼 감싸고 있는 한라산의 봉우리들이 백색왕관을 쓴 제왕처럼 보인다.

 남한 최고의 봉우리 한라산!

 차갑게 불어오는 세찬바람도 이 순간에는 한갓 땀을 씻어 주는 소슬바람 같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전경은 온통 은백색의 꽃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해안선, 오름과 작은 섬들, 이 모든 것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또하나의 벅찬 감동이다. 이런 감동이 있기에 흔히들 겨울 산행의 백미를 한라산 등반이라 하는가 보다.

 하산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을 한라산을 생각하면서 큰 감동을 안고 돌아왔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