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는 전생 업이 무거워 남의 맏이가 된다던가. 이 봄 삼월이면 큰형님이 환갑을 맞는다.
남보다 약한 몸이라 힘 많이 드는 일하기 어려운 몸으로 농사짓던 큰형님은 날 훤해지는 신새벽부터 어둡도록 일하고 달 밝은 날이면 달빛 속에서도 일한다.
일밖에 모르는 큰형님은 언제 쉴까.
"밭일하다 논일하면 쉬는 거지 뭐. 논일하다 사과밭 일하면 쉬는 거고."
그 때는 쉬운 말로 큰조카 대학 등록금 책임지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는데 쪽파 밑 갈라져 나오듯 집 이루어 나오고 보니 말짱 헛말이다.
"당신이야 형님 덕 봐 대학 나왔다는 것 다 인정해. 하지만 나는 뭔 덕을 봤는데? 그리고 큰형님이 우리보다 못한 처지 아니잖아." 여자란 엄마가 되고 나면 자식 말고는 모른다더니 꼭 그렇다.
하긴 모두 다 핑계다. 불알 두 쪽 더 찼다는 사내라는 작자가 중심이 꼿꼿하게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형님이 호도 캐러 가자 한다
"하하, 형님도
호도가 고구맙니까."
염색한 머리 밑에서 허옇게 돋아오는 머리칼 쓸어 올리며 구부정하니 여윈 큰형님이 그냥 빙긋이 웃으며 망태기 하나 괭이 하나 들고 앞장선다
추석에 성묘 왔던 사람들이 사과 과수원 울타리로 넉넉히 둘러 둔 밤나무 호도나무 섞어 둔 숲에 숨어들어 알밤 너덧 말은 실히 털어 가는데도 "넵 둬라 다 여기 연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냐"하더니 다람쥐란 놈들 실히 한 가마니는 물어 갔으니 반은 찾아 와야겠단다
산비탈 몇 곳 괭이로 헐어 내어 두어 말
망태기에 담으며 나는 신이 났다
이곳저곳 더 욕심냈더니
그만 가잔다
"반만 건지면 됐다"
다람쥐란 놈 욕심은 많고 머리는 나빠 제 먹을 것보다 몇 곱절 물어 간다고 한다 그래 놓고는 어디에 다 두었는지 몰라 겨울에 굶어 죽기도 한다는데 하하, 그런 어리석음 덕분에 다람쥐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나 그렇게 땅 속에 물어다 묻어 논 것들이 싹을 틔워서 도토리 숲이 퍼져 갔다나
구부정하니 앞서 내려가는 형님
머리 위로 흰 구름 한 자락 여유롭다
졸시 <호도캐기> 전문
청춘은 육신의 나이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한다. 삶의 깊이나 넓이도 그렇다. 먹물 더 먹었다고 삶 깊어지거나 넓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