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철아! 이제 우리 고향의 절실한 이야기 노래해봐라. FTA 때문에 우리 고향 포도 농사 다 죽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시만 나오면 잤었는데 불알친구들 이야기도 나오는 ≪주변인의 시≫는 안 읽을 수 없어 읽었다나. 그러다가 어느 장날 딸아이
문제집 사러 들어간 장터 서점에서 <농무>라는 시집 한 권을 난생 처음으로 내 돈 내고 사서 읽어봤다는 이야기를 해서 잡지 내는 일에
힘을 얻게 했었던 고향친구 용덕이 말이다. 며칠 전에는 하 답답해서 데모하는 곳에 가 봤단다.
용덕이 참가했었던 농민대회도 이랬을까.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신경림의 <농무> 전편
징이 울리고 농민대회 막이 내렸다. 그저 구경꾼처럼 참석했던 사람들 다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에서 우리 얼굴엔 풀지 못한 분이 얼룩으로 남아 있다.
소주로 풀릴까. 꽹과리를 앞장세우고 구호를 깃발로 세워들고 장거리로 나서니
따라 붙어 호응하는 것은 조무래기들뿐이다. 밝은 보름달 아래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산구석에서 발버둥친들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말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그렇구나 도살장 앞에까지 왔구나.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신명나는 가락에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모습이 왜 이렇게
눈물나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