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벌써 봄이다.
냉이나 달래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나 쑥국에 묻어나는 향긋한 봄내음은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을 되살려 내기에 충분하다. 식탁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는 강바람을 타고 올라온 원동 들녘에도 어김없이 다가온다.
양산의 봄은 원동 들녘의 매화꽃 향기로 시작되나보다. 국도 변을 따라 원동으로 들어가는 길옆 곳곳에 피어있는 매화꽃은 강바람 맞으며 견뎌온 지난 겨울의 인내가 녹아있다.
지난해 9월 기상 관측 100년 이래 그 위력이 가장 강했다는 태풍 매미의 최대 피해지였던 원동. 낙동강이 범람하고 둑이 무너져 물속에 잠긴 채 고립무원의 작은 섬으로 남았었던 당곡ㆍ신곡ㆍ중리마을의 봄은 어떠할까?
지난 가을 그 모진 수해의 고통을 견디고 일어선 용당들 주민들에게 이 봄이 가져다주는 희망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토사유입으로 완전히 매몰된 농토며 시설하우스의 잔해위에서
"농민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다"며 절규하던 용당 주민들의 분노가 지금쯤은 어떠한 감정으로 남아 있을지…….
우수를 지나면서 제법 따뜻해진 햇살을 받으며
50여만 평의 넓은 용당들에 세워진 1500여 동의 시설 하우스에는 계절이 없다.
중리 마을 초입부터 딸기 향이 진동한다. 하우스 안에는 딸기를 따는 손길과 분류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탐스럽게 잘 익은 딸기는 따도 계속해서 나올 것 같은 화수분 같다. 혹시라도 상할까 조심스럽게 딸기를 따는 손길에는 간난장이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의 마음이랄까
수해로 정식했던 딸기모종이 삽시간에 사라져버리고 수해 복구로 한달 늦게 다시 정식했던 딸기 모종은 예년에 비해 수확이 늦은 것은 당연하다지만 이로 인해 겪는 농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이중 삼중이다.
22개동에 딸기를 심어 수확하고 있는 중리 마을의 하순용(58),백명자(55)부부는 딸기 분류 작업에 정신없다. "이중으로 부담했던 모종 값도 문제지만 한달 늦은 수확으로 수박으로 전환하는 시기도 한달정도 늦어 질 것 같다.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며 "올해도 7,8월경 수해를 입는 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길이 없다"고 말한다.
중리의 작목반장인 이철형(52)씨는 경기위축으로 딸기소비가 적은 것이 걱정이다. "그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시설농가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년 겪고 있는 수해로 인해 불안한 농사를 수 십 년째 하고 있는 중리지역의 토지를 정부에서 매입해 주든지, 제방을 쌓아 근본적인 수방대책을 세워주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딸기를 사먹을 때마다 한 알의 딸기에 자식같이 키워내는 용당 주민들의 땀과 고통이 배인 수고가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원동면(면장 정영현)에서도 딸기소비 촉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시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 계통출하도 좋지만 대형 매장과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시에서 도와준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근원적인 대책 없이는 불안해서 농사를 못 짓겠다"는 주민들의 말이 귓전에 내내 머물러 있다.
그래도 원동은 많은 희망을 가진 축복받은 고장이다. 용당들에 딸기 밭이 있고 삼정지 마을에는 매실이 있다. 그것뿐인가, 천혜의 배냇골이 품속처럼 자리 잡고 보물을 가진 신흥사와 산수화 같은 수암사의 불음폭포가 원동의 희망을 안고 있다.
파랗게 돋아난 보리밭 위에 희망을 뿌리는 아낙의 손길에서 봄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지난 가을, 매미의 고통을 이겨낸 원동면민의 마음이 살아있는 한 봄은 사철 마음속에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