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밖에 살던 사람도
숨을 거둘 때는
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새도 죽을 때는
새 속으로 가서 뼈를
눕히리라
새들의 지저귐을 따라
아무리 마음을 뻗어 보아도
마지막 날개를 접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어느
겨울 아침
상처도 없이 숲길에 떨어진
새 한 마리
넓은 후박나무 잎으로
나는 그 작은 성지를 덮어 주었다
-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全文-
새소리를 따라 숲길을 가다 상처도 없이 떨어져 있는 새 한 마리를 보고 갸름한 여성스런 얼굴의 보드라운 시인이 넓은 후박나무 잎으로 새의 시신을 덮어주며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항상 삶의 한 부분으로 같이 서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마음 뻗어 보아도 죽음에 닿지는 못한다. 날아다니던 새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제 뼈 속으로 가서 뼈를 누였으리라. 사람 밖에 살던 사람도 숨을 거둘 때는 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왔으리라.
시를 읽으며 삶 속에 함께 서 있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 학교 백목련 이제 피었나요ㆍ" 재작년 졸업한 녀석에게서 쪽지가 왔다.
"부푼 붓봉오리 같다."
"백목련이 져야 화사한 벚꽃이 필 텐데."
"이놈아, 피지도 않은 백목련이 들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냐."
요즘은 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겨서일까. 아니면 사람 사이 정이 없어져 그럴까. 상가(喪家)에 가서 슬퍼하는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창가의 백목련
시원스레 울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 울먹이더니
가지 끝마다
주먹만한 눈물방울 매달았구나
노조에서 쳐 놓은 천막 안
선득하니 찬 돼지머리 눌린 것
마늘, 풋고추, 막장
동갑계 O박사 술잔에만
흐린 얼굴 잠시 겹치고
C와 P, K와 K, Y
벌려 앉아 패를 돌린다
ㆍ
ㆍ
ㆍ
참
잠깐이지
가지 끝에서
눈물 한 방울 굴러 떨어진다
- 졸시 < 참 잠깐이지 > 全文 -
일찍 핀 백목련 큰 꽃잎이 뚝 뚝 떨어져 내릴 때 백목련을 닮은 L양이 부친상을 당해 퉁퉁 부은 눈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여겨지던 병원 장례식장에 갔다 와서 끄적거려 보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성지(聖地)인 그곳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