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보면 감독의 진심이 엿보일 때가 있다. 숨길 수 없는 첫사랑처럼 모른 척, 진지한 척, 올바른 척해도 감독의 속마음은 영화 곳곳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감독의 진심이, 그것도 아주 많이 들어있는 영화라 하겠다.
강제규 감독은 데뷔작이었던 '은행나무 침대'에서부터 헐리우드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소위 말해서 때깔 좋은 영화를 만들고픈 진심을 과감히 드러냈다. 그러한 진심은 '쉬리'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고 2004년 올해의 최고 화제작이 될 것이 분명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드디어 강제규감독의 진심과 노력은 폭발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묘사는 지금까지 개봉한 우리나라의 어떤 영화보다도 스펙터클하며, 방대한 물량과 섬세한 컴퓨터 그래픽은 한국전 당시의 시대상을 장엄하고도 삼엄하게 재현했다. 기본적으로 전쟁영화라는 측면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일련의 헐리우드 전쟁영화,'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 호크 다운'등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오거나 혹은 차용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사람들,거대한 폭파,극도로 세밀한 전투 묘사,흔들리는 카메라 등 익숙한 장면들이 '태극기 휘날리며'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 부분에서 평단과 관객들의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장면에다 전부 헐리우드 영화를 베꼈다는 것이 다수의 열광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의견들이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은 아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공공연히 자심의 진심이 헐리우드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오락영화를 만드는 것임을, 그래서 우리영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임을 드러내온 감독으로서는 헐리우드와 차별화 되는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앞서 근접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십분의 일 정도 되는 예산으로 이 영화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국의 영화 관계자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표현 방법이야 어찌되었건 분명한 건,강 감독과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모든 것들이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따 눈뜨면 우리집 안방이구
난 아침 먹으면서 형한테 얘기할꺼야.
정말 진짜같은 이상한 꿈을 꿨다구.."
3월 3일 현재 800만의 관객이 본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에 이어 다시 한번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실미도가 그랬던 것처럼 '태극기 휘날리며'도 공허한 스펙터클과 그저 헐리우드 영화의 짜깁기에만 그쳤다면 영화는 엄청난 홍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제 영리하다. 정서적인 공감이나 심리적인 울림이 없는 영화, 탄탄한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는 차갑게 외면한다. 그런 점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화려한 겉포장 속에 ‘형제애’라는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물을 넣어놓았다. 관객들 중의 대부분은 영화를 보는 내내 조용히 눈물을 훔치거나 훌쩍거렸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형의 모습은 신파임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진한 공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본 후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보다도 자신이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어떤 장면이 감동적이었는지,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흥행하는 영화의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동안 실패를 거듭했던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아갈 점을 명확히 제시했고, 어쩌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정한 미덕은 바로 이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건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