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난을 부적처럼 달고 다니는 남자…'
언젠가 소개된 아내의 '내 지아비'라는 시(詩)에서 아내는 제 남편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렇다. 나의 지난 26년의 결혼생활은 돈과는 철저히 거리가 먼,언제나 가난과 동무하며 살아 온 세월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물론 커가는 아이들에게 영양제 한 알, 보약 한 첩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어쩌랴. 가장으로서의 내 무능함을…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나의 네 아들들에게 칭찬이라는 보약을 먹이는 데는 결코 인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 칭찬이라는 보약은 약효가 대단히 빠르고 뛰어나다.
자랑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우리 아이들이 '글짓기 대회'다 '그림그리기 대회'다 하면서 심심찮게 상을 받아 왔는데 그것도 아마 칭찬이라는 보약의 약효가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어느 집의 아이든지 유심히 관찰해 보면, 뭔가 남다른 것을 한 두 가지씩은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에다 불을 지펴 주는 일, 그 일이 곧 우리 부모들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한마디, 그 보약을 먹는 아이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두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어서 보기가 좋다고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믿음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에 대한 내 책무와 사명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앞으로 아이들이 더 성장해 가면서 가슴 뿌듯한 보람을 맛볼 일도 많겠지만, 시행착오 또한 무수히 치르게 되리라.
몇 해 전,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이 <좋은 아버지모임>이었다면 참여하는데 다소 망설였겠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ㆍ려ㆍ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세상 살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만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무슨 대단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능력대로 자기가 기울인 노력만큼 성취한 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사는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나는 아이들의 아비로서 내가 먼저 그러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에게 백번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자녀들 보는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가르침이다. 게으른 부모 밑에서는 결코 부지런한 자식이 자라날 수 없다. 부모가 인생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면 자녀들도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게 된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후 혹시라도 "나는 나의 아버지처럼 살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내 삶의 한갓 보람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는데 문득, 아이들 방의 벽에 걸려있는 시화(詩畵) 한 점이 머리에 떠오른다.
한 10년여 되었을까? 그 해 내 생일 날, 아들 녀석들이 무슨 비밀결사라도 하듯이 저네들 방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뭔가 요란하게 부산을 떨더니 "아버지 생신 선물…"이라고 내 놓은 게 바로 이 시화다. 당시 몸이 아파 중학교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큰 아이가 직접 시를 쓰고 제 아비 모습을 청승스레 꾸며낸 그림까지 곁들여 멋지게 만든 작품이다.
내게는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생일선물이었던 것으로, 나는 지금도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면 우정 아이들 방으로 건너가 이 시를 음미하고는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다소 부끄럽기는 하지만,이 시를 여기에 옮겨본다.
[우리 아버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적으시오'
언젠가 작성한 설문지
난, 마ㆍ파ㆍ람
아버지 이름을 적는다
깡마른 몸에서 뿜어 나오는 아름다운 목소리
우리 가슴을 파고든다
펜 한번 손에 쥐면
가는 손가락 아름다운 글이
우리 마음 뒤 흔든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마흔 아홉 생을 아름답게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
내 삶도 아버지처럼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그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으리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린 눈에 제 아버지가 그토록 아름답게 비쳤나 모르겠지만, 그사이 어느새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저도 이제는 아비의 약점과 고뇌를 다 알고 있으리라. 그래, 내 자랑스러운 아들들아. 너희는 이 아비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주려무나.
마파람
(행복한 가정 가꾸기 전문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