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작천정 벚꽃 보러 갔었다. 상춘곡(賞春曲)에서 연하일휘(煙霞日輝)라 하더니 말 그대로다. 멀리서 보니 눈부신 햇살 아래 노을 머금은 빛나는 구름이 한가득 내려앉아 있다. 들어서 보니 흥청거리는 노랫소리 속으로 백설이 어지럽다. 아름다움이 소멸하는 속에서 사람들은 즐거움 가득한 얼굴로 부유하고 있었다.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와 술 한 잔도 걸치지 않고 돌아왔다.
벚꽃이 진다. 아름다운 것은 참 쉬이 스러진다. 교정의 벚꽃, 피는 듯하더니 환한 햇살 아래 하마 눈발 날리듯 한다. 오늘은 수업 시작하면서 칠판에 시 한 편 먼저 썼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 낙화 > 전문
이백도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옛사람이 밤에 촛불을 잡고 노닌 것은 다 이런 까닭 때문"이라 했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다는 데도 아이들 얼굴은 교정의 눈부신 벚꽃보다 환하다. 전혀 울고 싶은 얼굴이 아니다. 그 훤한 얼굴 때문에 내 마음도 밝아진다.
날 들어 햇살 쏟아지자 사흘밤낮 술렁이던 떡갈나무 숲은 가슴속 깊이 갈무리해두었던 등불마다 기름 부어 가지 끝끝 연둣빛 불길 밝히고 퇴색한 마른 풀대 아래 납작 엎드렸던 쑥,냉이,벼룩이자리 어린 순 머리 풀어 기지개 켠다 민들레 길다랗게 목 뽑아 올려 멀리 살피고 벚나무 꽃맹아리 팝콘처럼 하얗게 가슴 부풀 듯 재깔재깔 와그르르 짝짝이 쏟아져 나오는 토요일 한낮 큰놈 버들치가 중치 버들치 좇아 짓궂게 군다 피라미 피라미끼리 참마주 참마주끼리 어울리고 장난치고 짝짓는다 계곡 물 속만 그러랴 범나비 범나비끼리 노랑나비 노랑나비끼리 어울리고 춤추고 봄맞이꽃 봄맞이꽃끼리 피어 서로 반갑다 마흔에도 쉰에도 사월은 첩첩 불길 더 환하여 지상이 천상보다 향그럽다
졸시 <사월> 전문
아이들 얼굴은 홑겹의 밝음으로 훤하지만 마흔,쉰 넘어서는 가슴속은 첩첩 불길 더 환하여 사월은 지상이 천상보다 향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