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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찬란한 슬픔의 봄..
사회

[교단일기] 찬란한 슬픔의 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4/09 00:00 수정 2004.04.09 00:00
자퇴하는 J에게

 어제,장기 결석하던 우리 반 학생이 자퇴하러 어머니를 모시고 학교로 왔다. 새 학년이 되어 담임과 학생으로 만난 지 겨우 한 달이 지난 때라 자퇴를 한다고 하니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동안 담임을 맡아서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사이에 그 학생은 '저만치' 혼자 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뿐이다.

 그 학생은 일주일 이상을 무단으로 결석을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하고 학교에 나오도록 타이르고 했지만,효과가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학생의 어머니가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나와서 상담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상담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생과 담임인 나는 아무것도 함께 나누어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상담은 그저 행정적 절차에 관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옆에 앉아서 훌쩍이며 자퇴를 막아보려는 어머니의 애틋한 눈물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허허롭게 창 밖만 바라보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그동안 상담에 제대로 응하지 않던 학생이 '엄마와 잠깐 이야기하도록 단 둘이 있게 해주세요'라고 한다. 순간, 얘기가 제대로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리고 또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들어가보니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고 있고 학생은 멍하니 앉아 있다. 어머니와 딸 사이 대화의 결말은 결국 '자퇴'가 되고 말았다.

 대화 내용을 물으니,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학교 안에서 자신과 다른 학생들의 문제와 학교 밖에서 어떤 문제라고만 말하고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한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결국,자퇴원서를 쓰고 총총히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 학생을 보내고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는 고속도로만 응시했다. 멀리 보이는 파릇파릇한 풀들도 보았다. 학교를 떠나려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예전에 햇병아리 교사시절 가출한 두 아이를 찾아 거리를 누비고, 멀리 외딴 곳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다녔던 열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학생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에 더욱 화가 났다.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술을 한 잔 먹고 밤 늦게 돌아오면서 길에서 생각나는 게 있었다. 예전에 가출한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밥 먹고, 같이 하룻밤 자고, 같이 벌거벗고 목욕탕을 갔었다. 그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었다. 마음이 통했던 건 아이들과 작은 것이라도 함께 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 든다. 차라리 내가 여자였다면,예전에 그랬듯이 같이 밥 먹고,같이 자고,같이 목욕이라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었다면,'어쩌면 ….'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J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올해는 담임을 맡은 지 8년째다. 처음으로 여학생 반을 맡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김영랑 시의 한 구절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이 왔고,끝내 잔인한 4월이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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