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1배 국토순례,38일간의 단식기도,38일간의 매일 3천배기도,그리고 또 다시 45일간의 단식정진.
이는 의학계에서도 말했듯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이녁의 몸 하나를 불사르려는 의지가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이 일을 스스로 끌어안은 이는 누구인가?
내원사 비구니 스님 '지율'-
이 사악한 세대에 지율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어떤 이들에게는 쓰린 아픔이요,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부담이다.
그의 곁에서 그가 꿈꾸는 희망에 동참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이들은 '지율'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고 아리다.
그러나 한 세상 살아가자면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앞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누군가를 누르고 이기는 것이 곧 인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사는 사람들,그래서 '더 높이','더 빨리'를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지율'은 천지분간 못하는 한낱 하찮은 신중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 같잖은(?) 비구니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고 싶지만,또 그것이 그리 쉽지 않아 이 비구니가 마냥 귀찮고 버겁고 두렵다.
스님을 만났다. 국내 처음으로 동물인 도롱뇽을 원고로 제기됐던 일명 '도롱뇽 소송'에서 도롱뇽이 패소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마련한 자리인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지율스님을 만났다. 13일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6시 30분에 시청 동백홀에서 가질 스님의 책, '지율, 숲에서 나오다' 출판기념회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
'160㎝ 쯤이나 될까?' 작달막한 키에 자그마한 몸집. 그 어디에 무슨 힘이 있어 이 이는 그리도 독한 고행을 견뎌냈을까?
"진실이죠." 대답이 참으로 간결하다. "진실은 결코 진 적이 없어요."
'아, 그렇구나. 진실이 이긴다는 그 믿음 하나가 이 이를 이 사바의 저잣거리에서 그리도 당당할 수 있게 하였구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자기 한 몸을 생각하였더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스님의 입에서 성경이 인용되는 데도 전혀 생경하게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론 생명이 없는 돌과 물에도 애틋한 사랑을 품고 있는 그에게 굳이 내 편 네 편이 어디 있을 것이며 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무슨 소용이랴. 다 부질없는 일이려니.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 비구니 스님에게 온갖 부류의 벗들이 많은 까닭은… 불교의 도반들 뿐 아니라 가톨릭의 사제며 수녀들, 개신교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아무 종교적 믿음을 갖지 않은 이들, 그리고 나라 밖의 사람들까지 그와 이웃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의 한 사람, '제인 구달'.
영국 출신으로 26세 때인 1960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비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며 야생 영장류들의 생태를 연구해오고 있는 '제인 구달'은 숲을 지키기 위해 숲을 나온 먼 나라 한국의 스님, 지율에게 한 말했다.
"이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당신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니 부디 몸을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바로 당신이 사랑하는 자연과 생명을 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율은 이녁 몸 하나 망가져도 그것이 다른 뭇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기꺼이 자신을 내 던진다.
그런 지율스님이 자연과 숲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디 있을까?
"나는 비겁하게 살아 온 사람의 하나예요.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달려들어서 말리지 못한 일도 많았어요. 그러나 마음은 늘 편하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천성산의 밑동을 뚫으려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또 내가 그냥 지나치는 구나. 산은 말도 못하는데…"
화들짝 놀란 지율은 "이제 후회는 그만하자"며 숲을 걸어 나와 마침내 열렬한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그때,지율의 귀를 때린 한 소리,작지만 큰 울림의 소리 하나가 들렸다.
"산이 아파요" 말도 못하는 산인가 했더니 그 산이 말을 걸어 온 것이다. 연이어 풀도 나무도 뭇 벌레들도 말을 걸어 왔다. "거기 누구 없나요? 살려 주세요…"
자연 속에 뿌리내린 산사의 생활을 통해 그는 일찍이 자연과 인간이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천성산이, 내 몸이 부서지려고 하는데 나설 수밖에요… 그것은 삶의 절박한 문제이지 무슨 사상이거나 이념이 아니에요."
꿇어앉은 스님의 닳아 구멍 난 양말 뒤꿈치가 눈길을 끄는 스님의 책,'지율,숲에서 나오다'의 겉장을 넘기면,천성산 내원사 계곡과 화엄벌,그리고 아스팔트에 꿇어앉은 지율스님의 사진이 나오고 계속해 책장을 넘기면 두 번째 곡기를 끊고,천성이란 화두로 45일간 단식하며 쓴 스님의 단식일지와 사진들이 이어진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지난 3년간 숲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불살랐던 기록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리타 테일러(영남대 영문과 교수)가 말했듯 '열정적인 생태주의자이자 시인이며,동시에 타고난 예술가적 재능을 지닌 사진작가이기도 한 지율스님'이 쓴 이 책은 이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커다란 공명이 될 것이다.
세상의 수십만 도롱뇽의 친구들과,그 친구들의 친구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로,개발이 능사라고 믿고 있는 관료들과 산이 뚫리면 얻어먹을 수 있는 떡고물에 눈이 먼 중생들에게는 육중한 타이름으로…
그렇게 진실이 마침내 승리하는 그날까지 비구니 스님,지율의 '희망의 노래"는 불려지고 또 불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