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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란다...
사회

[교단일기]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란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4/17 00:00 수정 2004.04.17 00:00

 내가 몸담고 있는 교사 연극 모임에서 회의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란다."
 선생님들은 언제 아이들이 조금씩 자란다고 느끼셨나요? 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땐 정말이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안 났더랬다.
 애들이 손톱만큼 자란다고? 아주 오랜만에 봤을 때 확 달라진 건 많이 봤어도...
 그 때 내 대답은, 글쎄요..., 였다.

 그런데, 드디어 그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왔다. 바로 그저께, 우리 학교 연극반 아이들과 있었던 일이다.

 참,지난주부터 우리 연극반 신입생들이 워크숍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7월 방학 시작하자마자 공연을 해야 해서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 한다.

 이번엔 <개(開)!꿈 designtimesp=8135>이란 작품을 공연하기로 했다. 어릴 때의 꿈을 조금씩 잃어가는 고딩들의 이야기이다. 연습하는 데 들여다봐야지, 하면서도 아쉽게도 빼꼼한 날이 없어서, 마음만으로 그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2학년 수업을 들어갔더니, 연극반 부장 녀석이 쉬는 틈을 이용해 내게 하소연하는 거다.

 - 샘, 1학년 애들이 대본을 가지고 태클 걸었는데요.

 - 오잉? 뭐라고.

 - 주인공 두 명한테만 대사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너무 비중이 작은 것 같다고. 대본이 좀 그렇다고요.

 <개(開)!꿈 designtimesp=8144>이라는 이 작품은 코러스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검은 옷 입고 분장한 코러스들이, 무대 위에서 배경도 되고 정령 역할도 하는, 상상력이 많이 요구되는 작품. 대본으로 드러난 것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더 많은 작품. 그러니 경험이 부족한 1학년들 눈에는 대사 없는 대부분의 역할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기로 하고 1학년 아이들을 부른 것이다. 똘망똘망 앉아있는 1학년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 야! 너거들, 어제 선배들한테 대본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며? ㅋㅋ 잘 했다.

 - 네???

 - 후배들 건방지다고,무조건 선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안 하고 너거 얘기 다 들어준 선배도 장하고,선배한테 솔직하게 표현한 너거도 장하다.

 - 아~ ^^

 - 근데, 이 작품은... 어쩌고 저쩌고...

 - 아~~~

 어쨌든 이렇게 얘기를 잘 끝내고, 1학년 아이들을 교실로 보내고, 2학년 부장과, 연출을 맡은 2학년 녀석을 불러서 같이 얘기했다.

 - 힘든 거 없수?

 여기서부터가 가관이다.

 - 샘,솔직히 애들,너무 장난스러운데요. 대본 리딩하는데,장난스럽게 하고,핸드폰 만지고,목소리도 있는 대로 다 안 내고. 첨에 스텝(음향, 조명 등) 하겠다는 놈이 많아서 스텝 힘들다고 얘기하면,그 담엔 또 아무도 안 한다 하고... 시간 약속도 안 지키고... 연극은 이래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 푸...

 나는 그만 웃음이 났다. 솔직히 귀여웠다. 그리고 그 녀석의 작년 모습을 생각하니 더 그랬다.

 - 야,임마. 작년에 2학년 연출했던 주현이 행님이 뭐라 했는 줄 아나? 1학년들 버릇없다고,너무 진지하지 못하다고,시간 약속도 안 지키고,도무지 연극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 같다고,지금 니랑 똑~ 같이 말했다.

 - 맞아요???

 - 그래,그 때 주현이가,저거들도 선배 돼봐야 우리 기분 알지,이래 말했었다이가.

 -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내가 맨날 지각하고 그랬는데,애들한테 시간 지키라 하니까 좀 그렇네요. 나는 안 하면서 갸들한테 막 시키고. 밥맛이네요. 참...

 - 앗,그 정돈 아니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바른 걸 가르쳐줘야지. ㅋ

 난,아이들이,손톱만큼씩 자란다는 걸 느꼈다. 이런 발견이 너무 좋다.

 - 준우야, 니가 연출이니까,이번엔 악역을 좀 맡고,정민이가 좀 풀어주고 그라면 잘 될 거 같다. 힘들면 샘 찾아와라.

 - 네.

 - 그래 그래... 담주에 샘이 계란 삶아 갈게... ㅋㅋ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이렇게 아이들이 조금씩 커간다는 생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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