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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김수영의 '눈' 다르게 읽기..
사회

[시가 있는 마을] 김수영의 '눈' 다르게 읽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4/23 00:00 수정 2004.04.23 00:00

 문학 수업을 하면서 나는 각종 참고서나 문제집을 참고한다. 대개 기존의 평론들을 잘 요약해서 정리한 것들이라 수업 준비에 드는 시간을 절약해 줄뿐만 아니라 해석과 감상의 객관성 확보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참고서나 문제집과 영 다르게 감상하기도 한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 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의 <눈>전문
 

 참고서에서는 '눈'은 안(眼)의 의미와 설(雪)의 의미로 해석한다. '살아 있다'는 표현에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미래를 투시할 수 있는 眼이며,'마당 위에 떨어진'이라는 표현에서는 깨끗함과 순결성을 상징하는 雪이라는 특성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한다.

 위에 따라 해석해 보자. (2연)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깨끗함과 순결성을 상징하는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깨끗하고 순결한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4연)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깨끗하고 순결한 존재인 눈을 바라보며 (그 눈 위에 대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뱉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름답기 때문에 침과 가래를 그 아름다운 대상을 향해 뱉는 사람은 없다. 뭔가 잘못된 해석이다.
 그렇다면 '눈'은 깨끗함과 순결성의 상징이 아니라 부정적인 대상이다. 눈 위에 대고 기침과 가래를 뱉자는 말로 볼 때 '눈'은 부정적인 대상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시선은 어디 가고 해타(咳唾)만 남았나니”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 咳唾는 '기침과 가래'인데 훌륭한 싯구로 해석한다. 이백의 <등금릉봉황대>에 나오는 “뭇 구름이 해를 가려 장안이 보이지 않아 나그네로 하여금 근심에 들게 한다.”는 구절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풍자 비판한 구절이다. 이런 훌륭한 풍자 비판한 시의 구절을 해타라 한다. 더러운 것을 보고 침과 가래를 뱉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은 더럽고 부조리한 것이다. '부조리한 세력의 감시의 눈'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시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부조리한 세력의 감시하는 눈은 살아 있다.
 명령이 떨어진 감시하는 눈은 살아 있다.
 집 안까지 감시라는 명령을 받은 눈은 살아 있다.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젊은 시인이여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감시의 눈 위에 대고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감시하는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감시하는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쓴 영혼과 육체(젊은 시인)를 위하여
 감시하는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젊은 시인이여 풍자 비판의 시를 쓰자.
 감시의 눈을 바라보며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통렬한 풍자 비판의 시를
 마음껏 쓰자.
 
 권위 있는 해석이라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1998년 ≪주변인의 시≫여름호에 실었던 '졸고(拙稿)'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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